시미즈 히로시: 아리가토 상 有りがたうさん (1936)
http://www.imdb.com/title/tt0027307/
http://www.criterion.com/films/1087-mr-thank-you
*아래 글은 오구리 고헤이 감독 홈페이지에 올려진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에세이를 옮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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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무라 영화상영회

올해 역시 군마현 오라마치에서 위의 영화상영회가 있습니다. 나는 프로그램 선정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아리가토 상'을 선정했습니다. 아래의 원고는 지난 달 도쿄상공회의소의 공보지 '트윈 아치'에 썼던 글입니다.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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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아리가토 상'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게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나다.
시미즈 히로시 감독은 1903년에 태어나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동갑이다. 쇼치쿠 카마타 스튜디오에서도 함께였고 두 사람은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탄생백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몇 번의 특집상영과 심포지움이 있었다. 오즈 감독은 지금도 유럽에서 신처럼 추앙을 받고 있어서 당연한 듯 하지만, 시미즈 감독은 근래의 프로그램이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쇼치쿠에서 DVD 박스셋을 발매했고 나 역시 그것으로 '아리가토 상'을 보게 되었다.
 
1936년 작품으로 일본영화가 본격적으로 토키 시대를 맞이할 시기였다. 시미즈 감독은 이때 이미 백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한, 한마디로 잘 팔리는 상업감독이었다. 아이들을 무척 빼어나게 담아내는 사람으로 영화 '바람 속의 아이'는 무척 유명하다.

'아리가토 상'의 타이틀에는 '원작 가와바타 야스나리'라고 쓰여져 있지만 나는 배움이 짧아서 원작을 알지 못한다. 초기에 이즈를 무대로 한 소설집에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승하차 버스가 고개를 넘나든다. 시모타에서 미시마 부근까지의 여정인 듯 한데 이즈의 아마기 길은 당시 완연한 산속길이었다. 인부, 봇짐장수, 나무를 등에 지고 옮기는 사람, 짐마차, 짐수레 등등 걸어서 왕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버스를 타려면 돈이 들었다. 일본은 불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승하차 버스를 운전하는 이가 젊은 시절의 우에하라 켄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버스가 다가설 때마다 모두가 한결같이 금방 옆으로 비켜주고 버스길이 터진다. 그럴 때마다 운전수는 손을 들고 '아리가토(고맙습니다)... 아리가토...'라고 외친다. 그래서 '아리가토 상'이라고 불린다. '아리가토'라는 말의 울림이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왠지 모를 푸근함이 전해져서 나는 기적 같은 영화로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안고서 버스에 오른다. 구와노 미치코가 연기하는 떠돌이 작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꺼리낌없이 말하는, 이른바 감초 역할. 도쿄에 하녀로 팔려가는 소녀가 타고 있다. 딸을 보내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어머니는 딸을 적어도 역까지라도 배웅하려고 함께 버스에 오른다.

아리가토 상은 중고 시보레를 구입해서 영업하려는 계획이 있다. 하지만 고개를 넘어서 마을을 나간 소녀들은 되돌아온 적이 없다. 작부가 아리가토 상에게 시보레를 포기하면 소녀 한 명을 도울 수 있다고 부추기며 떠본다.

창 밖에는 출렁거리는 바다의 흰 물결, 길가로 늘어선 집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밭. 여행을 통해 극이 보여주는 건 로드무비라고 불리는 장르다. 물론 당시 일본영화에는 그런 호칭은 없다. 세계적으로도 60년대, 70년대가 되어서 나오게 된 호칭이다. 그 배경에는 두 개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촬영기자재의 문제. 옛날에는 무거워서 다루기가 부자유스러웠다. 무대에 모두 설치하고 찍는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아리가토 상'은 전편 로케로 찍은 영화다. 버스 안 장면도 모두 실재 버스에서 찍은 것이다. 시미즈 감독은 예전부터 롱쇼트를 즐겨 썼다. 풍경 속의 사람을 찍는 것이 탁월해서 다른 작품에서도 다르지 않다. 평론가 사토 타다오 씨가 DVD 부클릿에 오즈 감독의 시미즈 감독에 대한 평을 인용하고 있다. '시미즈 감독은 세트촬영에서도 로케처럼 찍는다'라고 쓰여져 있다.

'오즈 감독은 나와는 반대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통 이 정도까지 넓은 화면으로 잡으면 풍경도 인물도 함께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이즈 이상으로 시미즈 감독은 사이즈가 롱쇼트가 된다. 이것은 기법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 사람에게 자리잡은 자연관, 말하자면 풍경을 사고하는 방식에서 오는 선천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로드무비라고 해도 빔 벤더스나 짐 자무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두번째 이유와도 관계된 부분이기도 한데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그릴 수 없다 라는 사고가 구미의 일부 영화감독에게 있었다. 구미사회의, 말하자면 구미문화의, 숨이 막힐 듯한 폐쇄감으로부터 이탈이며, 도피이며, 또한 재생이다. 벤더스의 빼어난 시정도 결국은 폐쇄공간의 여행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리가토 상'에는 그러한 기운은 털끝만치도 없다. 오히려 지역사회에 보다 훌륭히 담겨지기 위해 풍경을, 풍경 속의 사람들을 영화라는 프레임 속에서 응시한다.

친절하고, 미남자이며, 인기가 좋은 아리가토 상은 여정의 도중에 여러가지 부탁을 받는다. 버스는 그때마다 정차를 한다. 걸어서 고개를 넘어온 예능인은 오늘 머물 곳이 바꼈다는 것을 뒤따라 오는 아이들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뽕을 따는 아가씨들은 도시에서 유행하는 레코드를 사와달라고 부탁한다.

흰색 치마 저고리를 입은 조선인 남녀를 아리가토 상의 버스가 지나쳐 간다. 버스는 터널 바로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여자들은 다가와 이야기를 걸지만 그 전의 휴식 모습의 묘사가 무척이나 좋다. 산, 흘러가는 구름, 승객들은 버스 밖으로 나와서 기지개를 켜고 절벽을 향해 돌을 던진다. 이유같은 건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 하녀로 가게 되는 소녀를 향한 아리가토 상의 마음도 흔들린다.

한 무리의 조선인은 도로공사를 위해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그 일이 끝나면 다음엔 신슈의 터널을 파러 간다고 한다. 길이 뚫려서 버스가 다닐 수 있게 되어도 자신들은 버스를 탈 수가 없다. 여자는 일본 기모노를 입고서 한 번 아리가토 상의 버스를 타고 싶었다고 한다. 이 대사는 감독이 한껏 타협한 것으로 보이는데 쇼와 10년대의 일본영화로서는 이마저도 어려웠을 것이다. 징용과 강제연행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중노동에 종사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다.


'저 곳에 길이 생기면 한 번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서 아리가토 상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길이 없는 산으로 가서 길을 만들어야 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리가토 상'에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무언가가 해결된다거나  무언가가 바껴간다는 인상은 없다. 오히려 조선인 노동자들 무리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즈 지방, 생활터전의 전체상이 사람이 이동하고 버스가 이동함으로써 새롭게 떠오르는 듯 하다. 이동해서 어딘가로 가는, 그런 홀가분한 로드무비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인생의 여운과 애정을 오가는 삶의 리듬과 스피드 같은 것이 있다. 그것보다도 조금 더 빠른 스피드로 버스가 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조금 더 빠를 뿐이어서 그 버스가 사람들을 지나칠 적마다 '아리가토 상'이라고 말을 걸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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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va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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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1407 2010.12.08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취향에 안 맞아서인지 50년대 이전 일본 영화는 잘 안보는데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글을 읽어보니 필감해야 겠군요.
    오구리 감독의 Muddy River를 작년 이맘때 쯤에 새벽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감상했다가
    자는 아들을 말 없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잡은 장면에서 폭풍 감동을 받았었는데 말이죠.
    오구리 감독은 만드는 영화와는 다르게 에세이라 그런지 문자로 접하니까 날카로운 면이 느껴집니다.

  2. javaopera 2010.12.09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까마득한 예전 일본영화는 많이 접하질 못했는데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안마와 여자'나 '아리가토 상'같은 영화를 보니깐 생각 이상으로 상당히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네요. 제작연도만 보고는 지레짐작 낡은 영화라는 예단을 해버린 부분이 크기도 했는데 실제 감상을 해보니 여전히 크게 웃으며 보게 만드는 유머의 힘이 있는 영화들이었어요. 그리고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고... 저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사실 어제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가야코를 위하여' 원작소설을 구입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의 판매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다가 다른 홈페이지를 따라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오구리 고헤이 감독 홈페이지의 '아리가토 상' 에세이 글로 연결이 되어 있더군요. 그 덕분에 글을 옮겨오게 되었네요. ㅎㅎ '가야코를 위하여'라는 소설은 출판된 시기가 오래되었는지 중고책 가격이 상당해서 구입은 안되겠더군요. ㅜ.ㅜ 국내에서라도 출간이 되면 좋을텐데. 원하는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지 않으니 매 번 아쉽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