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3'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2.07.13 어니스트 뉴먼 '독창적이고 경제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

*아래 글은 월간 레코드리뷰 1994년 5월호에 실린 어니스트 뉴먼의 글을 옮겨온 것임.
(*책에서는 '어네스트 뉴만'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독창적이고 경제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

글 / 어니스트 뉴먼 Ernest Newman (1868년 11월 30일 - 1959년 7월 7일) 음악 학자

68세의 나이에 작품번호가 100번이 넘는 분량의 작품을 생산한 시벨리우스는 그럼에도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하기야 이건 그리 놀랄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음악 애호가 대중의 생각이 어떻든지간에 예술가에 대해서 우리는 몇년이 아니라
몇 세대를 놓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테면 평균적인 대중이 이 64년 전에 죽은 베를리오즈의 작품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까? 언젠가 나는 가수들이 후고 볼프의 작품 가운데 ‘Verborgenheit’ 나 ‘Gesang Weylas’ 밖에
모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하던 한 독일 문필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게 1909년의 일이었는데,
1933년이 된 지금에 와서도 그런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혼자 힘으로 악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야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흔히 일반인들은 음악에 대한 지식을 연주자들에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연주자들이라는 게 많은 경우 예술가보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돈을 장만하려는 장사꾼에
더 가깝다.

며칠 전에 나는 어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가 시벨리우스나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공부를
전혀 거부한다더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런
수고를 해야 하지? 멘델스존, 브람스, 브루흐,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만 가지고도—그리고 여기에
하찮은 애창곡 몇 개만 더 보태면—세상이 끝날 때까지 멍청한 청중들의 주머니에서 얼마든지 돈을
우려낼 수 있는데! 하기야 지휘자들, 바이올리니스트들, 피아니스트들, 가수들이 때때로 용기를 내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들고 나오기는 한다. 그런데 그때는 또 그 결과가 실망스럽다. 그 작품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그 작품에서 어서 손을 떼었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결과가 빚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따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시벨리우스 연주가 이상적이라고 하자. 그래서 우리의 청중들이 정말로 그들이 들어 마땅한 것을
듣고 있고, 그래서 그 작품을 좋아하고, 그 작품을 연주 목록에 넣어달라는 요청이 연주회 프로모터한테
쇄도한다고 가정하자. 그럴지라도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진보 수준을 볼 때에 일반 대중들이 시벨리우스의
전체 모습과 친숙해지는 데에는 삼백년쯤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작품이 얼마나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
‘국민악파' 라는 모호한 관용어의 개척자인 시벨리우스는 실제로 전체 시벨리우스 상의 기껏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것은 시벨리우스가 취급한 여러 장르들, 가곡이나 실내악, 협주용 음악들,
부수음악 등의 몇몇 대표작들만 놓고 봐도 누구나 쉽게 수긍을 할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 프롬나드에서 연주된 현악 4중주나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에, 대중적인
시벨리우스 상, 즉 ‘핀란디아', ‘슬픈 왈츠 , ‘엔 사가 , ‘투오넬라의 백조' , ‘카렐리아 조곡' 같은 작품이
만들어 온 시벨리우스와는 전혀 다른 시벨리우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벨리우스의 동시대인들이 그에 대해서 남겨 놓은 글은 대체로 궁극적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때때로 건전한 평가도 없지 않지만 이 대가의 정신적 윤곽을 그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기야
바그너나 베를리오즈,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을 훤히 꿰고 있는 현대의 비평가들조차도 실제로는
이 작곡가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시벨리우스에게 너무나 가까이 서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전체를 우리 내부에 깊숙이
놓아둘 시간, 음악사의 주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그의 근본을 파고들어, 아마도 1960년이나 2000년의
세대들이나 시도해 볼 만한 ‘초상화’ 를 그려 볼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시벨리우스의 다면성은 우리를 좀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이다. 그의 ‘국민악파적’ 작품들, 초기의 교향시들,
현악 4중주와 바이올린 협주곡들과 후기 교향곡들, ‘타피을라' 같은 작품들을 하나의 초점에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협주곡' 은 그 작품 하나로만 독립해서 보면 그를 독일 낭만주의의 아류로 치부케 할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 하기야 특별히 사랑스러운 느린 악장은 슈만한테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한술 더 뜬다. 그런 한편
피날레 악장의 어떤 테마는 음표 하나하나가 바그너의 ‘파우스트 서곡' 과 거의 동일할 뿐 아니라, 이 서곡과
리스트의 ‘파우스트 서곡' 을 그 정화로 꼽는 19세기 중엽 유럽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그 협주곡 외에도 수많은 다른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이, 우리가 그에 대해 연상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협주곡과 현악 4 중주는 초기 작품이 아니며, 거기에는 뚜렷한 정신적인 진보가 드러나 있다.
그는 국민악파의 역할에서 금세 비껴났다. 우리가 좀더 분명하게 시벨리우스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사실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중기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협주곡' (1903) 과 첫 두 교향곡(1899와 1902) 은, ‘엔 사가' (1892),‘카렐리아' (1893),‘핀란디아'
(1899)보다 더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며, 현악 4중주(1909) 는 ‘포횰라의 딸’ 과 제3번 교향곡 (1908) 같은 작품
뒤에 작곡된 것이다. 이 중기에 속하는 많은 가곡들 또한 핀란드인 시벨리우스의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의 내부에는 그를 전적으로 그 자신만의 영토로 몰아가는 어떤 가열찬 본능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빚어진 음악은 낭만주의도, 국민악파 도 아닌, 그 어떤 기존의 음악적 꼬리표도 달 수 없는,
요컨대 순수하고 단순하게 시벨리우스적이라고 밖에는 할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선배 음악가들이 가꾸어
놓은 음악적 언어로 작업을 했던 초기부터 이미 진정코 그 자신만의 음표를 가지고 있었고, 완숙기의 걸작들 속
에서 모든 위대작곡가들 중에서도 가장 개성있고 가장 독창적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베를리오즈이다. 베를리오즈는 시벨리우스처럼 선조들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베를리오즈의 경우에, 그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몇몇
선배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음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그 부채 관계가 모호했던 까닭은 베토벤이나 브람스, 바그너,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이 기댔던 선배들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였던 반면에, 베를리오즈가 어느 정도
라도 신세를 졌던 작곡가들은 대개 음악사를 공부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
이었기때문이었다.

시벨리우스 만년의 작품들에서는 그 어떤 다른 작곡가의 이름도 상기해낼 수가 없다. 그의 초기와 중기 작품들에는
여러 선배들의 영향이 묻어 있다. 거기서 전체적인 형식으로나 디테일상으로 완전한 그리고 오롯한 그만의 독창적인
퍼스낼리티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경제 (economy)’ 에 대한 격한 본능이 있었다. 그 본능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로 하여금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의지했던 시작과 결말의 음악적 형식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그의 가곡들이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그의 가곡들은 서두없이 곧장 자신의 테마로 뛰어들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면 갑자기
그쳐 버리는데, 그것은 사라질 때 눈곱만큼의 규약적인 찌꺼기도 남겨놓지 않는다.

시벨리우스 작품사의 분기점은 저 주목해 마땅한 제4번 교향곡이다. 이 작품의 간결한 어구는 처음 대하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여지껏 쓰여진 그 어떤 음악도 시벨리우스의 이 작품만큼 검약스럽지 않다. 마치 군살 하나 없이
뼈와 근육만으로 이루어진 운동 선수의 몸과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부터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사고는 점점
더 간결함쪽으로 철저하게 방향을 틀어쥐는데, 그정점이 ‘타피올라' 이다.

15분쯤 걸리는 이 작품은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기본 아이디어로 구성된다. 제7번 교향곡의 경우에도
보통 교향곡들이 답습하는 표준적인 구조에 눈곱만큼도 의존함 없이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논리를 따라 발전해 간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저런 테마의 단편들이 어떤 지점에서 왜 갑자기 솟아오르는지 또는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끝에 가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저 그것이 그런 식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겠구나 하는 깨달음,
그 작품은 내용적 표현만 예외적인 것일 뿐 아니라, 전체의 형식 또한 해체가 불가능한 하나의 견고한 통일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시벨리우스의 독특한 테마의 직조법은 오케스트레이션의 스타일과 결부되어 있다.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문학이나 그밖의 다른 어떤 예술의 요구도 포섭해낸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자신의 독특한 음악적 사고에 속해 있으며 그래서 어떤 것이 음악적 사고이고 어떤 것이 거기에 입혀진 옷
인지를 구분하 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년전 시벨리우스가 나를 놀라게 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는 내게 당시 ‘관현악법의 거장' 으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어떤 작곡가를 두고 사실은 피아노로 생각하는 작곡가에 불과하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때 그런 그의 생각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그의 말이 뜻했던 바를 깨닫게 된 것은 그의 ‘타피올라' 와 제7번
교향곡을 듣고 나서이다. 시벨리우스 자신으로 말할 것같으면 그는 단순히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케스트라로 생각하는,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자연스러운 언어로 해서 곡을 짓는 순수한 전형이었다. 그러니
앞의 두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을 터이다.

Posted by javaope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