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침 솔럼 Joachim Solum, 토마스 리엔 Thomas Lien: 깊은 고독 Dypets ensomhet (1995)
http://www.imdb.com/title/tt0112920/
http://history.pifan.com/film/film_detail.asp?f_num=1&cat1=9&cat2=0&uid=568
TV방영: EBS
풀장을 청소하는 남자의 고독과 강박적인 사랑을 그려낸 단편.
막스 폰 시도우의 들뜨지 않는 냉랭한 나레이션이 음울한 분위기를
한층 짙게 한다. 나레이터로서의 막스 폰 시도우라면 '유로파 (라스 폰
트리에)'에서 주술처럼 울려대던 나레이션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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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er Herrmann : Eine Nacht. Ein Leben (1999)
http://www.imdb.com/title/tt0305872/

피에로: 크리스틴 쉐퍼 Christine Schäfer (소프라노)
음악감독: 피에르 불레즈 Pierre Boulez

아놀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Pierrot Lunaire'를 영상화한
'원 나이트 원 라이프 One Night, One Lif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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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타임 / Overtime 2004, France, 4 min 55 sec, 3D
http://www.imdb.com/title/tt0453181/
http://www.youtube.com/watch?v=38yBYqEDOpE
2005 앙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학생작품부문 최우수학교작품상
2005 오타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학생 졸업작품 부문 우수상
감독 : 우리 아틀랑 Oury Atlan, 티보 베를랑 Thibaut Berland, 다미앙 페리에 Damien Ferrié
인형극 마스터 짐 헨슨을 추모하는 단편 애니메이션. 자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창조주의 죽음을 받아 들여야만 하는 인형들의 송별회가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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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구소 (1986)

영화노트 2008. 4. 5. 17:32

슈 케이(서기): 노랑구소
악당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총구의 불을 뿜는 '글로리아 Gloria (1980)'의
중년 여인 글로리아처럼 죄어오는 위기상황에서도 꿋꿋한 여성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러한 당당함에 크게 매료
되었습니다. 아마 남자분이라면 누구라도 큰 매력을 느낄 듯 싶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테잎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갑작스레 남편이 죽고 남편이
숨겨 놓은 자식마저도 떠안게 된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위기상황에 처하
게 됩니다. 이 영화의 라스트신은 속이 후련할 지경입니다. 여성 캐릭터가
걸리적거리는 방해물만 되는 액션물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다 뒤집히곤
하잖아요. 우리의 주인공 아줌마는 악당들 앞에서 결코 비굴하지 않습니다.
크윽.... 눈물 날 정도의 감동이 밀려옵니다. 비디오 커버의 저 장면이 바로
라스트신이죠. 이 영화는 여러모로 참여한 인물들이 흥미롭습니다. 아직
왕가위와 작업을 하기 훨씬 전이었던 크리스토퍼 도일이 카메라를 들었고
대만 영화계의 큰 형님인 허우 샤오시엔이 배우로서 출연해서 여주인공과
근사하게 무드를 잡습니다. 덜 떨어진 역으로 출연하는 장학우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큽니다. 국내 출시된 비디오는 한가지 큰 문제가 있죠. 오래전
삭제 신공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던 시기에 출시된 영화인지라 삭제신이 존재
합니다. DVD출시가 안된건지 근사한 화질로 다시 만나보고 싶네요. '노랑구소'를
보고 여주인공을 맡은 여배우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다른 출연작도 챙겨보았
었는데 '전로정전 (이동승 감독)'같은 꽤 괜찮았던 작품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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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자 일본영화 평론가인 도날드 리치(Donald Richie)의 사인입니다.
2002 부산영화제 '오시마 나기사-한국과의 인연' 세미나에서 받았던 사인입니다.
'오시마 감독의 건강이 허락해서 부산에 같이 왔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을
표하시더군요. 저도 같은 심정이었죠. 오시마 감독을 직접 보았더라면 그보다
더한 기쁨을 없을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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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재상영회에 갔을 때 두 감독님으로부터
받았던 사인입니다. '개봉 첫날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라고 하시며
웃음 지어 보이던 두분이셨습니다. 상영이 끝나고 같이 갔던 친구는 잠시
화장실에 가고 저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분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실래 사인을 부탁드렸었죠. 그당시 김태용 감독님은 'EBS시네마
천국'을 진행하시고 계셨었는데 잘 보고 있다고 하니깐 '진행하는게 많이 어색
하죠? 제가 조금 썰렁해요 ^^'라고 대답하시더군요. 민규동 감독님은 '이 친구
사이트에 꼭 글 남겨달라'고 하셨는데 사이트 주소를 몰라서 못 가봤네요.
큼지막한 백지에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다이어리 메모지에 받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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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형편없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DVD의 재출시만 마냥 바라던 상황이었는데
이후 스펙트럼에서 UE라는 괴물같은 사이즈로 출시해서 무척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보관상의 이유로 조촐한 킵케이스 형태를 좋아하는터라 화려한 패키지가 적잖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개봉 당시 챙겨두었던 팜플렛과 함께 찍어봤습니다. 제가 그때
군에서 휴가를 나왔었는데 남포동 극장가로 영화를 보러 갔더니 '러브레터'와 '여고괴담'을
상영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뭘 봤느냐하면........ 당시에 '러브레터'를 봤습니다. ^^;;
팜플렛은 챙기고 영화는 '러브레터'를.... ㅡ.ㅡ;; 아무튼 이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보고서 이영진씨의 열렬한 팬이 되었는데 매 출연작마다 열심히 챙겨봤었죠. 이후 큰 활약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에서 보기드문 마스크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조영'에 나오던 박예진을 보면서도 아쉬움이 들었었죠. 팬의 입장에서 보면
감독이나 배우가 무언가 남다르게 근사한 모습으로 발전했으면하는 이상적인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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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감독인 포루흐 파로허저드의 추모 시낭송회에서 받았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사인입니다. 해운대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집에서 멀고 아침 몸 상태도 별로여서 망설이던 끝에
갔었죠. 포루흐의 시가 수록된 소책자도 받고 마흐말바프 감독님 사인도 받아서 나름 걸음값이
있었습니다. ^^ 차분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행사였는데 방송사의 밝은 조명이며 시끄러운 카메라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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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당신 (2008)

영화노트 2008. 3. 22. 11:01
이시이 카츠히토 : 산의 당신: 토쿠이치의 사랑 山のあなた~徳市の恋~
감독: 이시이 카츠히토 ('녹차의 맛')
시미즈 히로시(清水宏) 감독의 1938년작 '안마와 여자 按摩と女'를 리메이크한 작품.
온천에서 만난 미스터리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맹인 안마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카세 료, 츠츠미 신이치, 감독 이시이 카츠히토 그리고 앞에 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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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타 영화제 사이트에 있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인터뷰를 일부 옮겨봤습니다.
아직 일본어 실력이 일천해서인지 어렵네요.  ^^ 뒷부분도 추가할 예정입니다.
해당 사이트에 영문도 있습니다. 6,70년대 일본 아방가르드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큰 산이죠. 대중성이라는 면에서는 빗겨갈 지 모르지만 지금 보아도 신선한
아이디어는 더욱 돋보입니다.

http://www.yidff.jp/docbox/9/box9-2.html

일본의 다큐멘터리 작가 No. 9 日本のドキュメンタリー作家 No. 9
마츠모토 토시오 松本俊夫

이번 일본의 다큐멘터리 작가 인터뷰는 전후 일본의 영상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야마가타 국제 다큐
멘터리 영화제의 일본 다큐멘터리 회고상영에서도 몇몇 작품이 상영된 바가 잇습니다.
마츠모토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나 실험 영화 분야 뿐만아니라 영상이론, 영상교육의
방면에서도 정력적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편집부의 아론 제로우입니다.

제로우: 마츠모토 씨께서는 처음에는 화가가 되려고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결국엔 영화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미술에서 영화로의 전환이랄까 처음에 어떻게 해서 영화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마츠모토: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만 대학에 들어갈 즈음은
1950년대초였습니다. 일본은 무척이나 빈곤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제대로 먹지 못한
다는 것이었지요. 그래도 저는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미술학교에 가는 것을 크게 반대하셨습
니다. 수험료도 수업료도 내주시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렇게 된다면 힘든 것이지요. 미술학교에 가는 것은 단념하고 의대에 들어가게 되었
습니다. 도쿄대였지요. 정신분열증이나 뇌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싫어
진 것은 아니었지만 일생 한번뿐이니깐 역시 예술 방면으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고 도중에 문학부의 미학미술사로 전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쿄대에는 실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업은 없어서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예술이론과 역사를 공부하고, 실습은
독학으로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던 중에, 영상으로 현대미술과 깊숙이 관련시킨 아방가르드
시네마라는 것이 20년대 유럽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서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을 받았습
니다. 일본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외국 책이나 문헌 등을 통해서 상당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미술의 문제와 영화의 문제가 하나로 딱 맞게 중첩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영화도 좋아했습니다. 이미 중학교나 고등학교때부터 영화는 즐겨 보러다녀서 불량소년
취급받기도 했지요. 신주쿠 경찰에게 두번 정도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빼먹고 돌아
다닌다고 해서 말이죠. 그정도로 종아해서 아버지가 극장관계 주주여서 공짜표를 지니고 있던
친구에게 네가 볼 때는 금방 돌려 줄테니깐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학교는 낮까지, 그 후에는 바로
신주쿠로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깐 신주쿠 영화개봉관은 전부 들어갈 수 있었어요.
닥치는대로 봤으니깐 당시 개봉했던 영화는 거의 봤던 셈이지요.

제로우: 일본영화도 외국영화도 상관없이요?
마츠모토: 네, 둘다 상관없이요. 그리고 메이가자에서 상영하는 오래된 영화도 봤지요. 일년에
수백편 정도를 봤습니다. 그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었지요. 단지 자신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
하게 된 것은 방금 말했다시피 엑스페리멘탈 세계를 만나고부터입니다. 그때까지 관객으로서
영화를 무척 좋아했지만 스스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 그리고 마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들어갈 때였나... 이탈리아 리얼리즘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영향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때까지는 없었던 것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할까... 현실과 표현을
한덩어리로 해서 사람의 마음 속에 쭉쭉 잠식해 들어오는, 그러한 영화라는 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니깐 이탈리안 리얼리즘과 엑스페리멘탈리즘, 아방가르드와 다큐멘터
리가 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죠. 어느 것에도 굉장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
죠. 아방가르드 필름이라고 하는 것은 분방한 상상력으로 세계의 예측을 넘는 자유가 굉장히 매력
적이지만 반면 현실과의 관계가 때때로 희박해져 버려서 닫힌 세계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또한
다큐멘터리는 현실과의 관계는 실재적이고 강하지만 조금 더 내면적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시대배경에 의존적인 작품은 시대가 변하면서 뭔가 낡아버린 느낌이 들게 되지요. 이 두 방법
의 매력과 한계가 부딪치는 지점에 새로운 영화의 과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꿈같은 영화의 가능성은 알랭 레네의 '게르니카'를 단서로 해서 심층 분석해 나갔던 것이 출발점
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가장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의 기록성이나 현실감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특성을 제대로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시대에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은 영상
도 많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상, 카메라 앞에 현실이라는게 있는 것이지요.
객관적인 현실과 작가의 주관적 조작과 표현의 세계, 이 세가지의 관계.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가 출발점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나는 대학 시절에는 실기를 공부하지 않았으니깐 어떻든
간에 대학을 졸업하면 영화 학교에서 4년간 모두가 배웠던 것을 현장에서 일년간 익히리란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분업이 되어 있지 않고 영화 제작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전부
참여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중간 규모의 영화사에 들어갔습니다. 실기의 기초를 마스터하려고 한 것
이죠.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이 '신리켄 영화 新理研映画'라고 하는 프로덕션이었습니다. 특별히 두
드러진 매력도 없는 회사였지만 어느 정도 실기의 기초를 습득하는데는 딱 좋은 규모였습니다.
실제로 전부, 기획의 시작부터 필름의 완성까지 모든 부문에 걸쳐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일 이외
에도 여러가지 필름을 빌려와서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필름을 풀어서 공부하거나 여러가지
듣고 읽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대략 일년이 지나고 일본 대학의 연출 코스에서 공부하는 정도의 것들은 익혀서 이듬해에는
이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얼마전 돌아가신, 아직은 무명시절의 토루 다케미츠와
야마구치 가츠히로 등과 함께 기획하고 만든 '은륜 銀輪'이라는 작품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PR영화
입니다만 비교적 아방가르드적인 영화입니다. 일부 아트 세계에서 높이 평가된 적도 있어서 아마
십여년전에 50년대 일본 아방가르드 회고전이 파리의 퐁피두에서 있었을 때 주최측으로부터 출품
의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관계자가 흩어져서 찾았지만 이미 그것을 제작한 회사도 사라져
버리고 전혀 소재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귀중한 것인데요. 다케미츠 씨가 만들었던 뮈지크
콩크레트(musique concrète, 구체음악 혹은 구상음악)도 영화에 쓰인 것이 일본에서는 최초였을겁
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상당히 귀중한 것인데 네가티브가 분실된 것은 상당히 유감입니다.

그 다음에 만든 작품은 '잠함 潜函'이라는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아오모리현의 하치노헤 해안가에
잠함이라고 할, 바닷물이 올라오는 것을 높은 기압으로 억누르면서 기초를 쌓아가던 공사가 있었
습니다. 잠함 속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높은 기압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어서
심장이나 여러가지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런 가혹한 노동을 조선인이나 일이 없어서 돈을 벌러
온 동북지방의 농민이 합니다. 그러한 점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습니다.

다음 작품은 '봄을 부르는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촬영현장은 이와테현의 산촌마을과
도쿄의 변두리였습니다. 이와테현은 일본의 티벳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도시의 저변에는 노동력
이 없어서 이와테현 인근의 아이들이 중학교를 나오고 그곳으로 가서는 가장 힘든 일을 했습니다.
훨씬 힘든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견딜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농촌과 도시를 잇는 관계를 상징하는
집단취직의 단면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찍어가면서 부딪히게 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고 하면 그 즈음 좋은 다큐
멘터리라고 불리는 것은  우선 소재 자체가 감동적이고 사회적, 정치적인 화제가 되는 것이었습니
다. 말하자면 영화를 찍기 전부터 정보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영화는 그것에 대해 어느 정
도 영화로서 고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걸까. 그러한 것에 왠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현실과의 조합
관계에 의지하고 않고 말이죠. 영화 자체가 영화로서의 표현력과 리얼리티라고 불리는 가치를 확립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영화가 현실의 재현적인 전달수단이나 도구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보도나 프로파간다이지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 예술적인 감동을 추구하는 한 그러
한 영화의 자립적인 가치를 조금 더 분명히 또 하나의 현실로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사건이나 정치적인 투쟁이 시대의 표면에서 보기 힘들게 되고 다큐멘터리도 쇠퇴
하고 맙니다. 그리고 또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표면화하면 다시 흥하게 됩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후영화의 출발점으로 이탈리안 리얼리즘에 굉장히 감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
리아도 포함한 전후세계가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되면서 이탈리안 리얼리즘은 종말을 맞았습니다.
전쟁중의 레지스탕스 시절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하면 죽게 된다거나 역으로 살기 위해서
친구를 배신한다거나하는 말하자면 한계상황의 드라마가 드러나 사회에 표면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전쟁직후는 눈으로 보아 당장 알아차릴 수 있는 빈곤과 기아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문제가 세계가 직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였던 셈이죠. 드러난 현실을 붙잡는 것이 당장 세계의 공동
체험으로서의 리얼리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경제 부흥이 시작되고 빈곤이나
한계상황같은 것이 직접적인 형태로는 보기 어렵게 됩니다. 이탈리안 리얼리즘도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현실의 시각적 현상을
고집하는 사람은 빈곤이 표면에 드러난 변경이나 과거의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사회적 모순을
외부로부터 포착하기 쉬운 곳을 찾아서 집어듭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밖에 사회적 모순에 대처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무언가 이상합니다. 사실,
경제부흥으로 모순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모순은 도처에 있습니다. 먹을 것을 먹고
입을 것을 입게 되었다... 거리도 번화하게 되었지만 무언가 사람의 마음 속의 공동감이나 허전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순을 파악해 가지 않으면 새 시대에 대응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런
것을 골몰했습니다. 그러한 부분부터 조금 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게 하는 주관성이
다큐멘터리에 담길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라는
것은 상호부정하면서 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로우: 물론 그러한 문제의식에 부딪칠 때는 그것을 자신의 작품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
니다만 마츠모토 씨는 그것뿐만 아니라 집필활동으로 그러한 문제점을 다뤘습니다. 그당시 예를
들어 오시마 나기사 등 쇼치쿠 누벨바그의 감독들도 잡지에서 논쟁에 참가하는 것과 같은 작가이면
서 비평가로서의 입장에 섰던 예가 있었습니다.
마츠모토: 영화계에 시대를 관통하는 비평가가 없었고 작가도 잠자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계
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특히 일본은 전쟁책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학에서
도 미술에서도 전쟁 중에 국가가 요구하는대로 되버렸습니다. 전쟁에 협력하는 국책적인 작품를
만들던 사람들이 전후 미국이 들어오자 휙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민주주의적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것을, 작가 스스로의 전쟁 책임을 지려는 내면적 갈등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
았기 때문에 이상해집니다. 전쟁중도 그렇고 전후도 그렇지만, 작가는 자신의 주체를 규명하지
않고 , 권력이나 사회의 추세에 따라서 만듭니다. 그것이 몹시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화계는
특히 자신들의 전쟁 책임을 스스로 따져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대로 민주주의적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체질이 일본의 전후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리얼리즘의 문제로서도, 군국
주의적인 전의 고양 영화의 리얼리즘과 전후 민주주의 영화의 리얼리즘과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
습니다. 테마와 소재가 바꼈을 뿐입니다. 그러한 거짓을 확실히 하고, 의식과 표현의 근본적인 뼈대
부터 일본 영화의 변혁을 문제삼으려면  언급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평을 했습니다. 만드는 일도 비평도 이론도. 그리고 운동도 조직도
전부 했습니다. 상영활동도 없었기때문에 그것도 했습니다. 전부 했던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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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va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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