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1.06.06 구로사와 아키라 '타르코프스키와 솔라리스'

구로사와 아키라와 타르코프스키

내가 처음 타르코프스키를 만난 것은 첫 소련 방문 때 모스필름에서 열린 환영오찬 자리에서였다.
그는 키가 작고 말랐으며 다소 몸이 약해 보였으나 머리가 굉장히 뛰어나 보였고 유난히 감성이
도드라져 보여서 왠지 다케미츠 토루와 매우 닯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촬영이 있다면서 도중에 자리를 떴는데 잠시 뒤 식당 창문 유리가 심하게
떨릴 정도의 폭발음이 들렸다. 내가 놀란 얼굴을 하자 모스필름 소장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전쟁이 일어난 게 아닙니다. 타르코프스키가 로켓을 쏘아올린 거예요. 하긴 저한테 이번 타르코프
스키와의 작업이 큰 전쟁이긴 합니다만.'

타르코프스키는 그때 솔라리스를 촬영중이었던 것이다. 점심식사후 나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
세트를 방문했다. 과연 까맣게 타버린 로켓이 우주위성기지 세트의 한쪽 구석에 있었다. 세트에서
로켓을 쏘아올리는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묻는다는 걸 아쉽게도 깜빡하고 말았다. 위성기지 세트는
큰 돈을 들여서 공들인 것으로 두꺼운 듀랄루민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차가운 금속제의 은색 빛으로 빛났고
나란히 늘어서있는 계기류의 광전관이 적색, 청색, 녹색의 광선으로 미묘하게 깜빡이거나 물결치듯이 움직
이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 상부에는 두 개의 듀랄루민 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작은 바퀴가 달린 카메라가
매달린채 위성기지 내부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타르코프스키는 마치 아끼는 장난감
상자를 보여주려는 아이마냥 밝은 표정으로 설명을 해가면서 세트를 안내해주었다. 함께 따라온 본다르추크가
세트 제작에 들어간 비용을 물었는데 타르코프스키의 대답을 듣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트 제작비용은
'전쟁과 평화'의 본다르추크마저도 놀라게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는데 일본돈으로 하면 약 6억엔 정도가 들었
다고 한다. 모스필름 소장이 자신에게 큰 전쟁과 같다고 말한 의미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돈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건 굉장한 작업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정적
으로 세트를 안내하는 타르코프스키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솔라리스가 지나치게 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도입부의 자연묘사가
너무 긴게 아닌가 싶지만 지구의 자연과 이별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의 중첩이 주인공이 우주위성기지에 쏘아
올려진 이후의 이야기 밑바닥에 깔려있어서 견딜 수 없는 지구 자연에 대한 향수로서 관객의 가슴을 죄어온다.
그것은 향수병과도 닮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긴 도입부가 없다면 위성기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분을
관객이 직접 느끼도록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밤늦게 모스필름 시사실에서 보았는데 보고 있는 동안 지구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
면서 가슴이 아파왔다. 과학의 진보는 인간을 대체 어디로 끌고 데려가는 것일까. 무서운 감정을 이 영화는 훌륭
하게 담아서 보여주고 있다. SF영화에 이것이 없다면 단순한 몽상이 되고 만다. 솔라리스를 보고 있는 나의 머리
속에 그런 감회가 오고 갔다. 그때 타르코프스키는 시사실 구석에서 함께 보았는데 영화가 끝나자 부끄러운 듯이
나를 보면서 일어섰다. 나는 타르코프스키에게 말했다.
'굉장히 좋네요. 무서운 영화군요'
타르코프스키는 수줍은 듯 하지만 기쁜 듯이 웃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영화인협회 식당에서 보드카로 건배를 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타르코프스키는 크게 취해서 식당에서 틀고 있던 스피커의 음악을 끄고서는 7인의 사무라이
테마 음악을 큰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지지 않고 함께 불렀다. 나는 그때 지구에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솔라리스는 보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안겨주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SF영화가 아니다. 굉장한 공포를 안
겨 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타르코프스키의 날카로운 감성이 잡아낸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직 인간이 모르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인간이 엿본 우주의 심연, 위성기지의 기묘한 방문객, 죽음에서 삶으로 역행하는 시간, 무중력의
기묘한 감각, 위성기지의 주인공이 떠올린 그의 집은 물에 젖어 있다. 그것은 무언가 주인공의 절실한 감정이 온몸
에서 짜낸 땀이나 눈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소름끼치게 하는 것은 도쿄 아카사카미츠케의 로케이션 장면. 거울을 능숙
하게 사용하면서 자동차의 헤드램프와 테일 램프의 움직임을 증폭시켜서 미래도시를 만들어낸 쇼트. 솔라리스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재능은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난해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동의
하지 않는다. 타르코프스키의 감성이 남달리 날카로울 뿐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솔라리스 이후 거울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그의 어릴 적 기억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이
영화 역시 난해하다는 사람이 많다. 얼핏 보기에 맥락없는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이 논리정연
하게 이어져 있을 리 없다. 조각나있는 기억의 파편이 기묘하게 이어져 있는 것에서 유년 시절에 대한 시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본다면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없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그러한 것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 나는 그것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장래성을 본다.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기 바쁜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Posted by javaoper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