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 앞을 볼 수 없던 오린은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고 '고제'(맹인 여자예인)들에게 받아들여져 '고제'가 된다. 성인이 된 후 남자와의 관계를 금하는 고제의 계율을 어겨 홀로 떠돌아야 하는 하나레고제가 된다. 남자들의 노리개감이 되면서 유랑을 거듭하던 오린은 자신을 존중하고 아껴 주는 츠루카와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평생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아래 글은 DVD에 수록된 소개글을 옮긴 것으로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음.) 샤미센을 연주하고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며 동냥을 하는 떠돌이 맹인 여자 예인 '고제'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이토 신이치 화백이 고제의 심상을 그린 '고제' 시리즈의 영향이 크다. 사이토는 60년대부터 츠가루, 호쿠리쿠를 여행하다가 고제를 알게 되면서 그녀들을 모티브로 한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1970년, 긴자의 문예춘추 화랑에서 개최된 '사이토 신이치 에치고 고제 일기전'은 디스커버리 재팬 붐과 맞물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연일 각계의 저명인이 찾아왔다. 그 중 한 사람인 오시마 나기사는 TV 다큐멘터리 '고제, 맹인 여방랑예인'(1972)을 감독한다. 사이토 신이치는 고제를 찾아나서는 작업과정의 성과를 '고제=맹인 방랑예인(1972년 일본방송출판협회)과 '에치고 고제 일기(1973년 가와데 쇼보신사)로 정리하면서 이것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사이토 화백의 그림을 포스터로 사용한 사이토 고이치 감독의 ATG 작품 '츠가루 죵가라부시'(73)는 1973년도 키네마 준포 베스트 10에서 1위를 차지한다.
'츠가루 죵가라부시 (1973)' [사이토 고이치 감독작]
본작의 원작이 되는 '하나레고제 오린'은 1975년 신초샤에서 간행된 미나카미 츠토무의 중편소설이다. 원작은 작자의 이야기를 통한 지문과 오린의 구전 부분으로 이뤄졌다. 미나카미의 문장을 발췌해본다."'하나레고제 오린'은 내 조모의 추억을 에치고 다카다에 남아 있는 고제 숙소의 사람들과 뒤섞어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생략] 나의 조모도 앞을 볼 수 없었고 마을의 아미타전에 머물며 동냥을 하는 맹인의 모습을 소년시절 본 적이 있다. [생략] 이 법당의 옆에는 혜림 지장보살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린이라고 하는 여자 맹인이 샤미센을 들고 법당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마을의 난폭한 남자들에게 희롱감이 되면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고 한다. 린은 그 후 법당에 지내면서 마을의 여자들에게 샤미센을 가르쳤지만 어느 추운 날 법당 내에서 죽고 말았다. 아이는 이후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혜림 지장보살은 맹인인 린의 영을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생략] 소설의 이야기는 나의 상상이라고는 하지만 행방도 알 수 없게 죽은 맹인 여자에 대한 진혼가다." ['미나카미 츠토무 전집 9' 후기, 1977년, 중앙공론신사)시노다 마사히로가 미나카미 츠토무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본작이 2번째이다. 전작 '붉은 구름'(67)은 시노다가 쇼치쿠에서 독립해서 '표현사'를 설립하고서 만든 첫번째 작품이다. '하나레고제 오린'은 그로부터 딱 10년만의 작품이다. 시노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제(瞽女), 북(鼓)의 눈(目)을 가진 여자라는 이형의 문자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벌써 십년이 된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이형의 성역이 어떤게 있는지 알고 싶어서 마음 속 응어리를 누를 길이 없었다. 나는 옛 일본을 향한 회귀를 바라는 게 아니다. 눈 앞에 있는 현대의 카오스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결코 잃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카오스가 틀림없이 이때까지의 문화를 짓밟으며 멸망시키면서 그 암흑 속으로 집어삼켜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멸망한 문화의 종말풍경 역시 나에게 현대이며 인간의 생과 사일 것이다." [카메라를 고제의 샤미센으로, 키네마 준포 1977년 7월 하순호 수록). 각지의 고제 건물 중에서 최대 규모를 지녔고 최근까지 후예 가 남아있던 에치고 다카다의 고제도 세 명을 남겨놓기도 한 참이었다.각색은 시노다가 제 1고를 집필해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품으로 유명한 야마가타 출신의 각본가 하세베 게이지가 제 2고를 집필했다. 하세베에 따르면 "제 1고는 오린이 경찰과 헌병에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원작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나는 그래서는 심리묘사와 정감을 그리려는 중심이 옆으로 비켜 간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오린이 탈주병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정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이 여행을 하는 와중에 애정이 커가는 구성으로 변경했다." ['사과의 변', '시나리오' 1977년 11월호 수록] 전반은 26세가 된 오린이 직접 들려주는 회상으로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고제 숙소에 맡겨져 성인에 이르지만 고제의 계율을 어겨서 고제 집단에서 추방되기까지를 과거와 현재를 뒤섞으며 전개한다. 그리고 탈주병 츠루카와 와의 만남. 여기서부터 서로 감정을 가지는 두사람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무대는 젠코지를 지나서 오린의 유년시 절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와카사 오바마로 흘러간다.전국 80개 장소를 로케한 미야가와 가즈오의 촬영이 아름다워서 그 자체로 한 장의 그림이 되는 단정한 구도로 사계절의 경치를 선명하게 담아내고 있다. 봄은 신록의 푸르름, 여름은 하늘과 바다의 청색, 가을은 낙엽의 황색, 겨울은 눈의 흰색 등 각 계절마다의 색을 나눈 색 설계 속에서 콘트라스트의 키 컬러로서 적색을 배색해 서 '눈이 보이지 않아도 냄새를 통해서 경치를 알 수 있어요'라는 오린의 정신 풍토를 깊은 감정으로 그려간다. 눈 속에서 초경을 맞이하는 오린의 경혈이 동백꽃으로 변하는 이미지, 오린이 남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여자의 기쁨을 알게 된 순간 연꽃의 이미지로 전환하는 영상의 강렬함은 맹인인 여자예인의 불행한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오린에 대 한 작자의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계율을 어겨 하나레고제가 된 오린도, 군대를 탈영한 츠루카와도, 저마다의 사회로부터 이탈된 사람들이며, 그와 더불어 다이쇼 시대의 빈곤을 상징하는 하급계층의 사람이다. 이탈된 이들 이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순간으로 끝나는 애정이 애절하다.영화는 도피행의 끝에 츠루카와가 체포되면서부터 조용히 비극으로 치닫는다. 화면은 회색을 기조로 한 차가운 색채가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누더기가 된 기모노를 땅에 끌면서 여행을 이어가는 오린이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 는 것을 암시하는 라스트. 이 부분은 원작에는 없는 하세베 게이지의 창작이다. 나무 가지에 걸린 붉은 허리띠, 까 마귀 떼,버려진 샤미센, 그리고 백골화된 오린의 사체, 바다로 지는 태양과 스스키노를 냉랭하게 비추는 달... 이 와 같은 일련의 쇼트에는 애도함을 넘어선 일종의 무상함마저 느끼게 한다.본작은 1977년도 키네마 준포 베스트 10에서 3위에 선정되었고 주연인 이와시타 시마는 수많은 영화상에서 주연여우상을 독점했다.
대응 암살자가 누군가를 살해하려 할 때 암살장면보다 암살의 시간이 다가오는 암살자가 어떻게 일상을 보낼까가 제 흥미를 끌었습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이 멍하니 있는 일상을 '말라버린 꽃'에서 잡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케베에게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모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물중독자 캐릭터는 우리들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입니다. 일본영화에서는 오래도록 일반관객에게 금기시되던 절망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인간은 죽는다, 타락한다, 구원할 힘도 때로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케베에게 존재하는 실존이 우리 사회의 모럴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에서 강렬하고 씁쓸한 맛을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협력 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쓴 파트너는 바바 마사루였습니다. 상당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굉장히 위트있는 대사를 써냈습니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도 마찬가지로 하겠지만 도박장 장면을 한 줄의 대사로 깔끔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한 줄을 100 컷으로 구성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굉장히 세세한 도박장 장면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 장면들이 이야기를 감춰버립니다. 자신이 생각한 플롯이 안 보인다며 시사회가 끝나자 화가 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영화가 상영금지된 사유는 아니었습니다. 도박장면이 너무 많아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쇼치쿠는 모럴이 높은 회사니깐 이런 안티모럴 영화는 개봉할 수 없었습니다. 개봉시키지 못한 건 제 책임입니다.
말라버린 꽃에 대한 반응 저의 다른 영화에 참여했던 테라야마 슈지의 각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처럼 시나리오가 이해불능이라는 불만도 있었고, 다케미츠 토루의 음악이 일반대중에게는 너무 난해하다는 등 영화가 완성된 후 수많은 불만의견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성공적이라는 평도 있어서 회사로서는 꽤 복잡한 심경이었을 겁니다. 영화가 완성이 되고 상영금지가 되었습니다. 검열통과가 실패했고 쇼치쿠 관객에게 맞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영은 금지되었습니다. 제 영화가 상업영화를 목표로 하는 회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 나만의 독립프로덕션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노다: 1959년부터 인간의 조건이 등장하는데... 나카다이 다츠야 씨를 만나게 되었고 고바야시 감독 자신의 전쟁체험, 어쩌면 광산에서의 경험도, 전쟁포로 체험도 전부 주연인 나카다이 다츠야 씨와 함께 5년간 만들게 됩니다. 이때 촬영감독도 바꼈죠? 미야지마 요시오 씨죠...
고바야시: 인간의 조건은 독립 프로덕션인 닌진 클럽에서 처음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그런 관계로 인해서 촬영감독이 오후나 촬영소(쇼치쿠 영화사)와 계약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곤란했어요. 그럼 일본 제일 촬영감독을 쓰자고 해서 미야지마 씨에게 부탁했지요.
시노다: 미야지마 씨의 작품을 그때까지 보고서 특별히 선택하게 만든 영화가 있나요?
고바야시: 네, '전쟁과 평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시노다: 카메이 후미오 씨의 영화죠?
고바야시: 네... 그리고 토호에서 촬영한 영화는 대부분 봤습니다.
시노다: 미야지마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쇼치쿠에서 카메라 설치를 할 때 보통의 고정된 카메라 삼각대가 아닌 트라이포드를 썼다고 하더군요. 삼각대로는 미묘한 높이 조절이 어려운데 트라이포드로는 정밀하게 높이며 각도 조절이 가능하잖아요. 수평앵글도 아주 정확하게 조정이 가능하죠. 그런 엄밀함이 쇼치쿠 영화에는 보기 드문 것이죠. [웃음]
고바야시: 트래킹 숏이나 팬 숏을 찍을 때 때때로 흔들림을 이용할 때도 있더군요. 꼭 필요하다 싶을 때 감각적으로 활용하더군요. 아마 그래서 트라이포드를 이용했을 겁니다.
시노다: 그런 엄밀함이 감독님의 기질과 맞았던 것이군요?
고바야시: 원컷을 찍는다고 하면 감독으로서 염두에 둔 게 있겠죠. 러시를 봅니다. 그런데 훨씬 좋습니다. 현장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좋아요. 현장에서는 쓸데없는 게 끼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런 걸 모두 제거하고 확실히 화면에 담아냅니다. 역시 필름에 담긴 것이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야지마 씨를 만난 후부터 현장에서보다 좋은 이미지를 필름에 담아낼 수 없다는 촬영감독은 믿지 않게 되었어요.
시노다: 나카다이 다츠야, 미야지마 씨와 함께 작업한 이 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군요?
고바야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할 때는 그런 느낌은 없었죠. [웃음]
시노다: 인간의 조건을 힘들게 작업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고바야시: 1부, 2부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홋카이도의 로케이션 장소에서 돌아왔을 때 아직도 세트 촬영이 3/5 정도가 남아있었어요. 11월에 돌아왔는데 12월이 다 지나가서도 끝내지 못했어요. 겨우 끝낸게 30일이었나... 그때까지 쌓아놨던 러시필름을 연말에 보기 시작해서 새벽 5시까지 모두 봐야만 했어요. 대부분 처음 본 러시였어요. 공개일이 1월 15일이었어요. 그때까지 편집하고 더빙까지 마치는게 불가능했죠. 촬영도 이전달부터 하루 네시간 밖에 못 자면서 진행한 것인데 그것이 후반작업까지 이어진 것이죠. 편집을 담당한 우라오카 씨가 신입이었는데 그 사람은 체력이 있으니 어떻게 하겠지 싶어서 맡긴 거죠. 나 역시 그 옆에 앉아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체력적인 문제로 그럴 수가 없게 된거죠. 우라오카 씨가 굉장히 힘들었죠. 하지만 맡겨둔 것이 그에게 자신감을 줬습니다. 졸기만 하면 내가 골프채로 마구 두드리면서 깨웠지요. [웃음] 연말 자정부터 러시를 보기 시작해서 아침 5시에 마쳤어요.
시노다: 밤을 새셨군요.
고바야시: 절반은 이전에 봤지만 절반은 남아있었던거죠. 아침 5시에 모두 저희집으로 데려갔어요. 닭국을 해놨는데 그걸 먹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까 의논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닭국 맛을 이야기 하더군요. 무척 지쳐있었을텐데...
시노다: 큰 일을 끝냈다는 느낌이 드네요
고바야시: 다만 시간이 없었어요. 편집 시간도, 필름 세척 시간도... 그래서 상당량을 잘라냈어요.
시노다: 최근 완전복원판이라는게 나왔는데요.
고바야시: 사실 아니에요. 아웃테이크를 찾으려고 애는 썼는데 모두 사라져 버렸더군요. 어쨌든 포스트프로덕션이 끝나고 동독에서 베를린 앙상블이 일본에 왔어요. '세 자매'라는 작품을 공연했을 거예요.
시노다: 체홉의 작품이죠?
고바야시: 네... 체홉의... 바로 이 극장에서 한다고, 이건 봐두면 좋다고 사토 마사유키 씨가 표를 주더군요. 아내와 아마 저 쪽 자리였을 거예요. 공연 내내 자고 말았죠. [웃음] 쿨쿨 잤던 모양이에요. 아내는 계속 깨우려고 애쓰고...
시노다: 하하
고바야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피곤해서 못 견디겠더군요.
시노다: 그런 에피소드가 있는 '인간의 조건'인데 쇼치쿠 영화사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잖습니까. 산 죠르지오 상을 수상하셨지요. 국제적인 성과를 얻었는데...
고바야시: 아마 3부, 4부를 찍을 때 그 소식을 들었을 거예요.
시노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전쟁영화가 있지만 완성도나 메시지 전달면에서 피크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고바야시: 처음 나왔을 때는 상당히 평가가 나빴어요.
시노다: 정말입니까?
고바야시: 카지라는 인물이 너무 미성숙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예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하는 인물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깨닫지 못한게 아닌가 싶어요. 1부, 2부에서 이런 장면이 있어요. 아라타마 씨가 처형장에 가는 나카다이 씨를 막으려는 장면이죠. 그 장면이 3분 정도의 길이였나... 더 길었었나 그랬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후지타 감독을 중심으로 자이언츠 팀이 촬영세트를 보러 왔어요.
시노다: 야구의 교진 팀 말이죠?
고바야시: 네... 그 장면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나카다이 씨가 일어나고 카메라는 그의 움직임을 트래킹하면서 3분 정도. 그 장면을 끝냈을 때 무릎 위로 눈물이 떨어졌어요. 미야지마 씨가 흘린 눈물이었어요. [웃음]
시노다: 마음 속 깊은 뜨거운 눈물이라고 하는 것이겠죠
고바야시: 그 정도로 미야지마 씨도 그 장면을 역시 좋아했던 듯 싶어요. 교진 팀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죠. '와... 영화 만드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군요' [웃음] 미야지마 씨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소비에트 병사에게 여인이 강간을 당하고 트럭에서 내던져지는 장면이 있어요. 일본인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그녀를 둘러쌉니다. 트럭이 장면에 들어서면서 피난민을 이리저리 내쫓아 버리고 여인을 또 내던집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제 나름의 구상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야지마 씨는 공산주의자여서...
시노다: 소비에트의... [웃음]
고바야시: 그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는 롱 샷으로 처리를 하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미야지마 씨가 그러더군요. '이 장면은 조금 더 클로즈샷으로 해야겠어요' [웃음]
시노다: 그랬나요? [웃음]
고바야시: 그것에 감격했어요. 미야지마 씨는 리허설을 지켜보면서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지 정했어요. 때로는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위치가 나오기도 하죠. 그러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카메라 위치를 조금씩 조정합니다.
시노다: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요?
고바야시: 네... 결국엔 제가 생각했던 정확한 위치에 카메라를 놓습니다. 다른 감독들은 그 사람에게 바로 말해버리곤 하죠.
시노다: 아... 그럼...
고바야시: 그렇죠. 자기 프라이드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거지요. 물론 그런 애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야지마 씨와 원활하게 작업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시노다: 미야지마 씨는 무척 엄밀한... 기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그런 분이어서 진짜 남자다운 분이었죠. 항상 게다를 신고 계셨고요. 고바야시 감독님은 언제나 댄디한 옷차림이었지요. 그래서 항상 두 분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셨는지 신기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고바야시: 저는 근본적으로 오후나(쇼치쿠)의 시스템에서 배우며 자랐는데 그 곳은 감독에게 전권을 주었지요. 하지만 독립프로덕션에서 '인간의 조건'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영화는 스태프 전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런 인식을 한 순간부터 제 영화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노다: 기노시타 씨나 오즈 선생 처럼 감독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분들이 만든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감독의 매 번의 움직임을 보고서 일을 했었지요.
고바야시: 저에겐 또 처음이었던 게 뭐냐고 하면... 오후나(쇼치쿠)의 감독들은 기본적으로 콘티를 만들지 않아요.
시노다: 그렇지요.
고바야시: 특히 기노시타 감독의 경우를 보자면 현장에서 움직여보면서 바로 장면을 구상합니다. 하지만 미야지마 씨와 일하면서 처음으로 콘티라는 걸 만들어 봤습니다.
시노다: 그 전까지 콘티를 만드신 적이 없었나요?
고바야시: 거의 없었죠. 만든 콘티를 미야지마 씨에게 전해주죠. 인상 깊었던 게 그 사람은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맨 밑에 있는 스태프가 낸 아이디어라도 자기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겼어요. 내가 생각해낸 콘티를 정말 꼼꼼이 읽었어요. 그 사람 나름의 이 장면은 이렇게 하면 어떤가... 조명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조명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어디로 할지 등등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 정도로 다른 사람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 상당히 놀랐어요.
시노다: 오후나의 감독들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배우들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잡아 이끌어냈었지요. 시마즈 야스지로 적인 연기지도론 같은 것이었죠. 콘티를 사용한 건 오즈 감독 밖엔 없었던 듯 싶은데요.
고바야시: 오즈 감독도 그 시절에는 사용하진 않았을 겁니다.
시노다: 오즈 감독의 대본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고바야시: 분명 전후 시기부터 콘티를 썼을 겁니다.
시노다: 그렇다면 아마 '만춘'부터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 앵글은 빨간 펜, 반대는 파란 펜, 클로즈업은 다른 식으로 표기를 했었지요.
고바야시: 제 생각에 오즈 감독은 콘티 만드는 걸 즐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웃음]
시노다: 색깔 별로 연필을 다 쓰면서 말이죠.
고바야시: 그런 느낌이 오네요. [웃음] 그 사람은 예전부터 정말 변하지 않았으니깐...
시노다: 영화도 말하자면 그렇지요... [웃음]
고바야시: 그래서 콘티 만드는 걸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뭘 그리는 걸 좋아했었지요.
시노다: 미혼으로 계셨기도 했고요. [웃음] 미야지마 촬영감독은 고바야시 감독 건너편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산과 같은 분인데 이 분과 협업하기 시작하면서 콘티라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네요.
고바야시: 그래요. 그리고 스태프 전원에게 내 아이디어를 이해시키는 방법이기도 했지요. 전원이 다음 장면이 어떻게 찍힐지 안다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시노다: 저도 독립프로덕션 회사를 차리면서 콘티 없이는 절대로 촬영 시작을 하지 않았어요.
고바야시: 예전 감독들은 그랬잖아요...
시노다: 아무 얘기도 안 해주죠.
고바야시: 감독이 '오늘은 21씬을 찍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스태프 누구도 어떤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웃음] 스태프들은 모른 채로 하는 걸 좋아했지요.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를 보면 코믹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있죠. 독감이 걸려 훌쩍거리고 있는 후지이 이츠키에게 히로코의 편지가 도달합니다. 그런데 편지에는 벚꽃이 활짝 펴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죠. 후지이 이츠키는 사카구치 안고 등의 이름을 들먹이며 만개한 벚꽃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예감을 호들갑스럽게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죠. 책과 가까운 직업을 가진 여성의 재미있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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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작품은 바로 사카구치 안고의 '만개한 벚나무 숲 아래'라는 소설입니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단편인데 벚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생명이 꺼져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묘사하고 있을 정도로 인적이 사라진 벚나무 숲의 공포를 섬뜩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산 속에서 산적질을 하며 지내던 남자는 여자에게 혹해서는 도시로 생활 터전을 옮기게 됩니다. 사람의 머리를 계속 요구하는 여자의 사악한 수집욕에 대한 거부감과 도시 생활에서 오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 남자는 다시 산으로 돌아오게 되죠. 산에서 머물 때 가장 두려워 하던 만개한 벚나무 숲. 여자를 엎고서 산길을 오르던 남자는 다시 돌아왔다는 기쁨에 취해 벚나무 숲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고는 그 곳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에 의해 영상화되기도 했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출간한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벚나무 숲 속 만개한 꽃그늘 아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꿈꾸는 돌'이란 출판사에서 '백치'라는 타이틀로 단편집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오타에 대한 불만글이 많아서 이걸로 구입을 했네요. 타이틀 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백치'는 아사노 타다노부 주연(데즈카 마코토 연출)으로 역시 영상화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카구치 안고의 작품 중 하나인 '간장선생'은 포함되어 있지 않더군요. 이마무라 쇼헤이의 연출이 더할 나위없던 그 영화의 원작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습니다. '꿈꾸는 돌'에서 나온 단편집에는 '간장선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편집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랫습니다. 저랬습니다'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어투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쯤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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