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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mm.online


폴란드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8월 31일까지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네요.
안제이 바이다, 자누시, 키에슬롭스키 등 익숙한 이름들도 보이고 다양한 영화들이 서비스
중입니다. 안드로이드 TV 용 앱도 구글 스토어에 있습니다. TV 앱의 퀄리티는 아쉬운데 메뉴
이동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가지 조작하는데 불편한 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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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월간 레코드리뷰 1994년 5월호에 실린 어니스트 뉴먼의 글을 옮겨온 것임.
(*책에서는 '어네스트 뉴만'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독창적이고 경제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

글 / 어니스트 뉴먼 Ernest Newman (1868년 11월 30일 - 1959년 7월 7일) 음악 학자

68세의 나이에 작품번호가 100번이 넘는 분량의 작품을 생산한 시벨리우스는 그럼에도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하기야 이건 그리 놀랄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음악 애호가 대중의 생각이 어떻든지간에 예술가에 대해서 우리는 몇년이 아니라
몇 세대를 놓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테면 평균적인 대중이 이 64년 전에 죽은 베를리오즈의 작품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까? 언젠가 나는 가수들이 후고 볼프의 작품 가운데 ‘Verborgenheit’ 나 ‘Gesang Weylas’ 밖에
모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하던 한 독일 문필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게 1909년의 일이었는데,
1933년이 된 지금에 와서도 그런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혼자 힘으로 악보를 파악할 수 있다면야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흔히 일반인들은 음악에 대한 지식을 연주자들에게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연주자들이라는 게 많은 경우 예술가보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돈을 장만하려는 장사꾼에
더 가깝다.

며칠 전에 나는 어떤 스타 바이올리니스트가 시벨리우스나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공부를
전혀 거부한다더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런
수고를 해야 하지? 멘델스존, 브람스, 브루흐,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만 가지고도—그리고 여기에
하찮은 애창곡 몇 개만 더 보태면—세상이 끝날 때까지 멍청한 청중들의 주머니에서 얼마든지 돈을
우려낼 수 있는데! 하기야 지휘자들, 바이올리니스트들, 피아니스트들, 가수들이 때때로 용기를 내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들고 나오기는 한다. 그런데 그때는 또 그 결과가 실망스럽다. 그 작품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그 작품에서 어서 손을 떼었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결과가 빚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따로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시벨리우스 연주가 이상적이라고 하자. 그래서 우리의 청중들이 정말로 그들이 들어 마땅한 것을
듣고 있고, 그래서 그 작품을 좋아하고, 그 작품을 연주 목록에 넣어달라는 요청이 연주회 프로모터한테
쇄도한다고 가정하자. 그럴지라도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진보 수준을 볼 때에 일반 대중들이 시벨리우스의
전체 모습과 친숙해지는 데에는 삼백년쯤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작품이 얼마나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
‘국민악파' 라는 모호한 관용어의 개척자인 시벨리우스는 실제로 전체 시벨리우스 상의 기껏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것은 시벨리우스가 취급한 여러 장르들, 가곡이나 실내악, 협주용 음악들,
부수음악 등의 몇몇 대표작들만 놓고 봐도 누구나 쉽게 수긍을 할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 프롬나드에서 연주된 현악 4중주나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에, 대중적인
시벨리우스 상, 즉 ‘핀란디아', ‘슬픈 왈츠 , ‘엔 사가 , ‘투오넬라의 백조' , ‘카렐리아 조곡' 같은 작품이
만들어 온 시벨리우스와는 전혀 다른 시벨리우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벨리우스의 동시대인들이 그에 대해서 남겨 놓은 글은 대체로 궁극적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
때때로 건전한 평가도 없지 않지만 이 대가의 정신적 윤곽을 그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기야
바그너나 베를리오즈,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을 훤히 꿰고 있는 현대의 비평가들조차도 실제로는
이 작곡가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시벨리우스에게 너무나 가까이 서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전체를 우리 내부에 깊숙이
놓아둘 시간, 음악사의 주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그의 근본을 파고들어, 아마도 1960년이나 2000년의
세대들이나 시도해 볼 만한 ‘초상화’ 를 그려 볼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시벨리우스의 다면성은 우리를 좀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이다. 그의 ‘국민악파적’ 작품들, 초기의 교향시들,
현악 4중주와 바이올린 협주곡들과 후기 교향곡들, ‘타피을라' 같은 작품들을 하나의 초점에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협주곡' 은 그 작품 하나로만 독립해서 보면 그를 독일 낭만주의의 아류로 치부케 할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 하기야 특별히 사랑스러운 느린 악장은 슈만한테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한술 더 뜬다. 그런 한편
피날레 악장의 어떤 테마는 음표 하나하나가 바그너의 ‘파우스트 서곡' 과 거의 동일할 뿐 아니라, 이 서곡과
리스트의 ‘파우스트 서곡' 을 그 정화로 꼽는 19세기 중엽 유럽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그 협주곡 외에도 수많은 다른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이, 우리가 그에 대해 연상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협주곡과 현악 4 중주는 초기 작품이 아니며, 거기에는 뚜렷한 정신적인 진보가 드러나 있다.
그는 국민악파의 역할에서 금세 비껴났다. 우리가 좀더 분명하게 시벨리우스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사실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중기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협주곡' (1903) 과 첫 두 교향곡(1899와 1902) 은, ‘엔 사가' (1892),‘카렐리아' (1893),‘핀란디아'
(1899)보다 더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며, 현악 4중주(1909) 는 ‘포횰라의 딸’ 과 제3번 교향곡 (1908) 같은 작품
뒤에 작곡된 것이다. 이 중기에 속하는 많은 가곡들 또한 핀란드인 시벨리우스의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의 내부에는 그를 전적으로 그 자신만의 영토로 몰아가는 어떤 가열찬 본능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빚어진 음악은 낭만주의도, 국민악파 도 아닌, 그 어떤 기존의 음악적 꼬리표도 달 수 없는,
요컨대 순수하고 단순하게 시벨리우스적이라고 밖에는 할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선배 음악가들이 가꾸어
놓은 음악적 언어로 작업을 했던 초기부터 이미 진정코 그 자신만의 음표를 가지고 있었고, 완숙기의 걸작들 속
에서 모든 위대작곡가들 중에서도 가장 개성있고 가장 독창적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베를리오즈이다. 베를리오즈는 시벨리우스처럼 선조들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베를리오즈의 경우에, 그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몇몇
선배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음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그 부채 관계가 모호했던 까닭은 베토벤이나 브람스, 바그너,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이 기댔던 선배들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였던 반면에, 베를리오즈가 어느 정도
라도 신세를 졌던 작곡가들은 대개 음악사를 공부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
이었기때문이었다.

시벨리우스 만년의 작품들에서는 그 어떤 다른 작곡가의 이름도 상기해낼 수가 없다. 그의 초기와 중기 작품들에는
여러 선배들의 영향이 묻어 있다. 거기서 전체적인 형식으로나 디테일상으로 완전한 그리고 오롯한 그만의 독창적인
퍼스낼리티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경제 (economy)’ 에 대한 격한 본능이 있었다. 그 본능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로 하여금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의지했던 시작과 결말의 음악적 형식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그의 가곡들이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그의 가곡들은 서두없이 곧장 자신의 테마로 뛰어들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면 갑자기
그쳐 버리는데, 그것은 사라질 때 눈곱만큼의 규약적인 찌꺼기도 남겨놓지 않는다.

시벨리우스 작품사의 분기점은 저 주목해 마땅한 제4번 교향곡이다. 이 작품의 간결한 어구는 처음 대하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여지껏 쓰여진 그 어떤 음악도 시벨리우스의 이 작품만큼 검약스럽지 않다. 마치 군살 하나 없이
뼈와 근육만으로 이루어진 운동 선수의 몸과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부터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사고는 점점
더 간결함쪽으로 철저하게 방향을 틀어쥐는데, 그정점이 ‘타피올라' 이다.

15분쯤 걸리는 이 작품은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기본 아이디어로 구성된다. 제7번 교향곡의 경우에도
보통 교향곡들이 답습하는 표준적인 구조에 눈곱만큼도 의존함 없이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논리를 따라 발전해 간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저런 테마의 단편들이 어떤 지점에서 왜 갑자기 솟아오르는지 또는 왜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끝에 가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저 그것이 그런 식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겠구나 하는 깨달음,
그 작품은 내용적 표현만 예외적인 것일 뿐 아니라, 전체의 형식 또한 해체가 불가능한 하나의 견고한 통일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시벨리우스의 독특한 테마의 직조법은 오케스트레이션의 스타일과 결부되어 있다.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문학이나 그밖의 다른 어떤 예술의 요구도 포섭해낸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자신의 독특한 음악적 사고에 속해 있으며 그래서 어떤 것이 음악적 사고이고 어떤 것이 거기에 입혀진 옷
인지를 구분하 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년전 시벨리우스가 나를 놀라게 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는 내게 당시 ‘관현악법의 거장' 으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어떤 작곡가를 두고 사실은 피아노로 생각하는 작곡가에 불과하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때 그런 그의 생각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그의 말이 뜻했던 바를 깨닫게 된 것은 그의 ‘타피올라' 와 제7번
교향곡을 듣고 나서이다. 시벨리우스 자신으로 말할 것같으면 그는 단순히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케스트라로 생각하는,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자연스러운 언어로 해서 곡을 짓는 순수한 전형이었다. 그러니
앞의 두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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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노와 자코: 데장샹테 La désenchantée (1990)
https://www.imdb.com/title/tt0099406/

 

La désenchantée (1990) - IMDb

La désenchantée: Directed by Benoît Jacquot. With Judith Godrèche, Marcel Bozonnet, Thérèse Liotard, Ivan Desny. Beth, a teenager in the midst of a painful moral education, is put in the unenviable position of holding her family together and debasing

www.imdb.com

어린 동생과 병상에 누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7세 소녀 베스가
세 명의 남자를 만나며 방황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

사운드트랙
Chris Isaak: Wicked Game
브람스: 16 Waltzes, Op. 39 - No.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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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트뤼포: 화씨 451
https://www.imdb.com/title/tt0060390/

 

Fahrenheit 451 (1966) - IMDb

Fahrenheit 451: Directed by François Truffaut. With Julie Christie, Oskar Werner, Cyril Cusack, Anton Diffring. In an oppressive future, a fireman whose duty is to destroy all books begins to question his task.

www.imdb.com


책을 불태우는 억압적인 미래사회를 그린 트뤼포의
SF영화 '화씨 451' 블루레이입니다.


메인메뉴


서플먼트로는 메이킹, 원작자인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인터뷰 그리고
작곡가 버나드 허먼의 다큐멘터리 등이 담겨 있습니다.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소설에 관한 여러 일화들을 들려줍니다.
플레이보이에 실리게 된 인연이나 그냥 떠올라서 붙인 등장인물들 이름이
어느 회사 이름이었다는 등의 뒷얘기들이 유쾌하고 흥미롭습니다. 
영상 말미에 이르러서는 진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꺼내놓으시는데
깊은 인상을 남기는 서플먼트 영상입니다.


버나드 허먼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실려 있는데 히치콕과의 관계가 끝장나고
트뤼포와 작업하게 된 일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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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 Bush - Never For Ever (1980)



어젯밤 밴드멤버 누군가가 내가 말했지
음악은 자신에게 삶 그 자체라고
그렇다면 음악이란 건 어디 존재하는 거지?
분명 그의 영혼 속에 있진 않을텐데
그가 즐겨하던 프레이즈와 알앤비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거야?

우리 엔지니어는 다른 생각을 말해줬어
죽은 것 마냥 살아가던 사람들은
이곳에 육신을 남겨 놓는 것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
그리고 그들은 손님들이 꽉 들어찬 방으로 들어간대

안녕하세요
미니 (미니 리퍼튼),
무니 (키스 문),
비셔스 (시드 비셔스),
비셔스,
버디 홀리,
샌디 데니

제발 날 밀어내지 마세요
날 쫓아내지 마세요
날 내쫓지 마세요
이곳에 머물고 싶어요

불을 꺼주세요
하늘에서 울리는 음성이 당신을 식사로 초대한다
흙에서 흙으로, 바람에서 바람으로
오늘밤 공연은 마크 볼란과 키스 문이 맡습니다

One of the band told me last night
That music is all that he's got in his life
So where does it go?
Surely not with his soul
Will all of his licks and his R'n'B

Blow away?
Blow away
Blow away

Our engineer had a different idea
From people who nearly died but survived
Feeling no fear of leaving their bodies here
And went to a room that was soon full of visitors

Hello Minnie, Moony, Vicious, Vicious, Buddy Holly, Sandy Denny.
Please don't thump me
Don't bump me
Don't dump me back there
Please don't thump me
Don't bump me
I want to stay here

Put out the light, then, put out the light
Vibes in the sky invite you to dine
Dust to dust,
Blow to blow
Bolan and Moony are heading the show tonight

Hello Minnie, Moony, Billie, Vicious, Vicious,
Buddy Holly, Sandy Denny.
Please don't thump me
Don't bump me
Don't dump me back there
Please don't thump me
Don't bump me
I want to stay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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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씨가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잠자는 남자' 출연했던 시기의 기사네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할 때 보러 갔었는데 잊혀지지 않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옆에 아주머니분들이 앉아계셨는데 '저 사람이 감독인가봐, 어머머...
말을 너무 근사하게 잘한다'면서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감독 인물평(?)을 깨알같이
하셔서 아주머니들이 무슨 얘기를 하나 은근히 신경이 갔던 재밌는 기억도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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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스크랩해둔 게 보여서 스캔을 해봤습니다. 스크린 혹은 로드쇼였던 듯 한데
일본쪽 기사를 그대로 옮겨놓다보니 일본쪽 영화명과 일본식 인명 표기 혹은 오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게 느껴지네요. 영화 정보가 협소하던 시절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 않나 싶네요. 

이리들의 오후      ---->  뜨거운 오후
지옥의 도피행      ---->  황무지
첼리 스터크웨자    ---->  찰스 스타크웨더
돌격     ---->  영광의 길
개그 영화    ---->  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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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토론토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수많은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갔어요.
파일론이라는 극장이었는데 아동용 영화, 카우보이 영화, 만화영화 등을 보러
갔죠. 어느날 극장을 나오는데 길 건너 이탈리아 영화만 상영하는 스튜디오라는
극장에서 어른들이 나오는게 보였어요. 거기엔 아이들은 없었어요. 어른들은
울거나 훌쩍였어요. 충격을 받았어요. 길에서 어른이 우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놀라웠어요. 길을 건너서 대체 어른들이 무슨 영화를 본 건지 보려고 갔어요.
그 영화가 이 영화였어요. 영화의 힘을 이해한 첫 순간이었어요.


늑대의 시간
아주 혼란스러우면서 매우 아름다운 영화예요. 제겐 특히 의미가 있는데 플라이를
찍을 때 제프 골드블럼이 벽을 타고 천장까지 기어오르는 장면이 필요했어요.
이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다는 게 떠올랐죠. 분노하고 감정적으로 고통에 찬 인물이
벽을 타고 천장까지 걸어가요. 아주 스웨덴 식이죠. 어떻게 찍었는지 보려고 감상을
했어요. 우린 큰 기계가 있고 여러 트릭을 썼죠. 베리만은 아주 간단하게 찍었는데
매우 효과적이에요. 재밌게도 이런 연결지점이 있어요. 내 친구 존 랜디스 감독이
말해줬는데 베리만의 섬에 갔다고 해요. 베리만이 세상을 뜰 때까지 살던 섬이죠.
당시엔 베리만 감독이 사망한 후인데 베리만의 비디오 콜렉션 전부가 거기 있었어요.
그중 플라이 비디오테이프도 있었죠. 혹시 내 얘기를 들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베리만과의 유일한 직접적인 연결지점이에요. 1960년대 당시 다른 젊은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예술로서의 영화의 시금석 같은 존재였어요. 그 당시에는 헐리우드
영화는 예술로서 여겨지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카이에 뒤 시네마를 비롯해서 프랑스에서
헐리우드 영화감독들을 작가로 인식하기 시작했죠.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어요. 그전엔
유럽의 예술영화였죠. 베리만, 펠리니, 트뤼포, 고다르가 신전의 정상에 있었죠.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당시 토론토에서는 18세 미만은 브리짓 바르도 영화를 못 봤어요. 뉴욕에 사는
친척이 있어서 가족들이 뉴욕을 갔어요. 뉴욕에서는 13세도 브리짓 바르도 영화를
볼 수 있었죠. 그래서 혼자 42번가로 가서 오로지 브리짓 바르도 영화만 봤어요.

로제타
영화감독으로서 다른 감독이랑 영화제에서 경쟁한다는 게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은
안 해요.하지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제의가 왔을 때 평소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거절을
할 수 없었어요. 유명 감독들의 수많은 영화들을 봤어요. 마지막으로 상영할 영화는 들어본
적도 없는 벨기에 형제 감독이라는 거예요. 사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영화를 보러가지도
않았어요. 바로 이 영화 로제타예요. 심사위원 모두가 이 영화를 사랑했어요. 처음 투표에서
모두가 이 영화를 골랐죠. 집행위원장인 질 자콥이 칸 영화제 역사상 가장 빠르게 결정난
황금종려상 투표라는 말을 했어요. 논쟁도 반론도 없었어요. 


에이리언
존 랜디스가 말해줬는데 댄 오배넌이 캐나다 영화 쉬버스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에이리언을 봤는데 내가 만든 저예산 영화 쉬버스와 똑같은 장면이 있었어요.
몸에 있던 패러사이트가 입으로 나와서 누군가의 얼굴로 뛰어들어서는 다시 입으로 들어
가는 거죠. 에이리언에서는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쉬버스와 아주 비슷했어요.
그런데 증거가 없네요. 댄 오배넌이 내 아이디어를 완전히 훔쳐간 듯 해요. 나한테 큰 돈을
빚진 거죠. 이미 댄 오배넌은 세상을 떴는데 대신 가족들에게 소송을 걸어야 겠어요. [웃음]

토탈리콜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와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로날드 슈세트가 시나리오를
담당했어요. 필립 K 딕 원작이죠. 매우 흥분되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12가지의 초안을 썼어요.
어느 시점에서 로날드 슈세트가 뭘 하려는 건지 알고 있는 거냐, 지금 쓴 건 필립 K 딕 버전이
아니냐고 말했어요. 우리가 하려는 게 필립 K 딕이 원작이고 하려는 게 이건 줄 알았다고 말했죠.
아니다 우리가 하려는 건 인디아나 존스가 화성 가는 이야기라고 로날드 슈세트가 말했어요.
알았소 그렇다면 난 안 하겠다 했죠.


상태개조
아주 흥미로워요. 패디 차예프스키('네트워크')가 썼죠. 패디 차예프스키가 자신의 이름을
알린 작품들과는 다른 SF 작품을 썼다는 게 매우 흥미로워요. 켄 러셀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도 무척 흥미로워요. 처음으로 봤던 켄 러셀의 영화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매우 좋아
하는데 SF를 안 만들 듯한 사람들의 이색적인 조합이에요. 윌리엄 허트 역시 제가 좋아하는
배우고 나중에 '폭력의 역사'에서 같이 작업했어요. 완전한 성공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평소 SF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게 흥미로워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퍼스널 쇼퍼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내 영화 크라임 오브 퓨처에 캐스팅해야겠다는 확신을 준 영화예요.
로버트 패틴슨과 아직 사귀고 있을 때 만난 적이 있어요. 토론토에서 패틴슨과 코스모폴리스를
찍을 때 현장에 왔었죠. 유쾌한 만남이었어요. 트와일라잇 이후로 배우로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는
알지 못했어요. 두 사람 모두 훌륭한 배우로 성장했어요. 서로 헤어지긴 했죠. 크라임 오브 퓨처에서
충격적으로 좋았어요. 나를 놀라게 했죠. 괜찮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훌륭하게 해내리란
생각은 못 했어요.

증오
오래전 이 영화를 봤어요. 뱅상 카셀과는 두 작품을 했어요. 감정의 폭이 깊고 명민한 배우죠.
내 영화에서 매우 다른 두 역할을 했어요. '이스턴 프로미스'에서는 러시안 갱스터 역할을 했었고
'데인저러스 메소드'에서는 아주 특이한 심리학자 역할을 했어요. 다시 같이 작업하고 싶네요. 
영국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가 이스턴 프로미스 촬영장에 온 적이 있어요. 나중에 영화를 보고서
이렇게 말했어요. '비고는 환상적이었어요.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건 뱅상 카셀이에요'
마틴 에이미스와 그의 부인이 뱅상의 연기에 감탄하고 말았죠.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는 토론토에서 만났어요. 첫 영화인 '로우'를 가지고 토론토 영화제에 참석하러
왔었죠. 아주 인상 깊었어요. 내가 마음에 들어했다는 얘기를 쥘리아의 프로듀서가 듣고서는 만나지
않겠냐고 해서 만났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거침이
없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첫 작품보다 강렬해진 작품을 내놓았다는 게 놀랍지 않았어요.
보다 모험적이고 보다 위험해졌어요. 아주 위험한 영화예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죠.  놀랐어요.
장르 영화를 만들면 수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기예르모 델 토로가 판의 미로를 들고
칸 경쟁부문에 왔을 때 말해줬어요. '기예르모, 영화가 아주 훌륭해요. 그런데 수상은 신경쓰지 말아요.
장르 영화이고 호러 영화라고 생각할테고 수상을 못 할거예요.'  수상 못 했죠. (웃음) 내가 그런 얘기를
해줘서 좋았다고 했어요. 마음이 편안해졌고 불안한 기분도 안 들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티탄이 상을
수상하고 기예르모도 쉐이프 오브 워터로 오스카 상을 받았죠. 아마도 장르로서 호러의 소외됨이
끝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수한 일반 영화로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어요. 쥘리아가
내 영화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줘서 으쓱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자기 길을
가고 있어요. 크래쉬가 상을 받긴 했는데 황금종려상은 아니죠. 그녀가 한단계 위에 있네요. (웃음)


스타워즈
어느날 토론토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루카스필름의 누구라고 하더군요. 제다이의 복수라는
영화를 만드는데 당신을 감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연출에 생각이 있냐고 묻더군요.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는 안 한다고 했죠. 나중에 제다이의 귀환으로 이름이 바꼈죠. 스타워즈 감독이
될 수도 있었던 가장 좋은 기회였죠.

포제서 

상대성
뉴욕 언더그라운드 영화감독 에드 엠쉬윌러의 영화예요. 토론토에서 만난 적도 있어요. 60년대,
70년 초반 토론토에 고다르를 비롯해서 알려지지 않은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이 있었어요. 에드
엠쉬윌러와 케네스 앵거가 토론토에 왔었죠. 보통 단편이니깐 다섯여섯 작품을 묶어서 상영을
했어요. 상영 후에는 밖으로 나가서 커피를 마시고 도너츠를 먹곤 했죠. 길가에서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환상적이었죠. 내 영화연출 초반엔 뉴욕 언더그라운드에 영향 받은 게 커요. 직접
카메라를 들어라, 영화학교를 갈 필요도 없다, 영화계에 몸담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걸 의미했죠. 정말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영감이 헐리우드나 유럽이 아닌 뉴욕 언더
그라운드에서 왔어요. 저에겐 매우 중요한 영화감독들이고 중요한 작품들이에요.

스트레인지 데이즈
레이프 파인즈와 일해야겠다는 확신을 준 영화예요. 이후 스파이더에서 함께 작업했어요. 연기 디렉팅에
대한 내 지론은 프로 연기자를 캐스팅했으면 그들은 연기를 할 줄 안다 감독이 어떻게 연기할지 말해줄
건 없다는 것이에요. 연기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연기하도록 해야 한다는 감독들 얘기는 말도 안돼요.
경험이 없는 연기자나 일반인 연기자라면 다르죠. 도와줘야 해요. 레이프 같은 연기자라면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해요. 내버려두면 돼요. '이스턴 프로미스'의 비고 모텐슨처럼 좋은 연기자는 연구를 해서
어떤 캐릭터인지 이해를 해요. 좋은 연기자는 디렉팅이 필요 없어요. 제대로된 캐스팅이라면 말이죠. 

지금 보면 안돼
충격 받은 영화예요. 이 영화로 인해 니콜라스 뢰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처음엔 촬영감독이었고
나중에 감독이 되었어요. 직접 만난 적도 있고 아들인 룩 뢰그는 프로듀서로서 같이 작업을 한 적도
있어요. 아주 강렬하고 아주 기이한 영화예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죠. 처음엔 주제를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죠.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죠. 최근에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아달라고
하더군요. 좋아하는 영화들이 수백편인데 정말 어려운 질문이죠. 하지만 '지금 보면 안돼'라고 대답해줬어요.

Posted by java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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