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tyle 2CD용 한글자막

미분할 통 한글자막

이치가와 곤: 악마의 공놀이 노래

원작에도 등장하지만 변사의 활약, 토키의 등장, 영화 모로코 등
이치가와 곤 감독이 유년에 경험했던 시절의 묘사가 영화를 만들
면서 흥이 나는 부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봄에 앞서 요즘 비가 내리는데 이 영화에도 비를 노래하는 프랑스
시가 등장한다.

도시에 비가 내리 듯
내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내 마음 속에 스며 드는
이 우울함 무엇이런가

시는 문외한이지만 베를렌느라는 이 시인은 이런 낭만이 있던 분이었던
건가. 영화에서는 노로 쥬베이라는 자랑이 심한 수다스러운 캐릭터가
등장해서 보들레르의 시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ㅎㅎ

나름 지루함이 크지 않았던 요코미조 세이시의 여타 소설에 비하면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곳곳에 지루함이 느껴진다. 특히 범인의 윤곽이
확연하게 드러난 후의 에필로그 느낌의 마무리는 건너뛰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영화에서는 원작에서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이야기를 탄력있게
다시 세웠다. 원작을 생각하면 원작보다 괜찮은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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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 레이코 大原麗子 (1946.11.13. - 2009.8.3.)
SMAPxSMAP 8월 10일자 방송을 보면서 뒤늦게 오하라 레이코 사망소식을
알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일본영화에 관심을 두고 보기 시작할
무렵 그녀의 출연작을 우연찮게 연거푸 보게 되면서 매료되었던게 생각이
난다. 후카사쿠 긴지의 '야규 일족의 음모', 미스미 겐지의 '자토이치 아바레
히마츠리 (1970)', 이치가와 곤의 '불새 (1978)' 등에서 매력을 뿜어내는 그녀를
보면 조용원과 같은 여배우의 모습이 연상이 된다. 한 눈에 미인이라는 감이
오는 뚜렷한 얼굴이라고 할까. 팬이라고 하기에 멋쩍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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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도 (이치가와 곤), 불새 (이치가와 곤), 이자카야 초지 (후루하타 야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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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와 곤 인터뷰 ['버마의 하프']

저는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는데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영화를 보고는
그림을 영화에 결합시킨 것이 인상 깊어서 이렇게 멋진게
이 세상에 있구나 싶었지요. 그럼 월트 디즈니가 되자고 마음 먹고서는
일본에서는 소규모 프로덕션이었던 시절인데... 지금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이지만
당시엔 만화영화라고 불렸는데... JO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만화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그 곳에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이 여러 영화를
찍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는 이제는 디즈니가 아니고 야마나카 사다오가
되고 싶어졌지요. 극영화로 옮기게 되었어요.

야마나카 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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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미국영화 그리고 프랑스 영화... 일본영화로부터도...
구로사와 감독이나 미조구치 감독의 영화를 공부했지요. 외국에서는 루비치, 카프라
정말 훌륭한 감독들이 당시엔 많았어요. 정말 즐겁게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다케야마 미치오의 원작을 읽었을 때 이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화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명이랄까 하늘의 목소리랄까 왠지 그런 느낌이었어요.
잡담같은 이야기지만 다케야마 상은 소설에서 쓴 버마에는 가본 적도 없어요.
가본 적이 없는데도 그렇게도 멋진 버마의 이야기가 쓰여졌어요.
처음엔 중국을 배경으로 쓰려고 했다더군요. 미군병사와 일본병사가 합창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노래가 중국에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본 적도 없는 버마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버마의 하프'란 소설을 쓴 것이죠. 다케야마 상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감동했어요.

낫토 상이 혼자서 굉장히 빨리 시나리오를 완성했어요. 원작과는 영화가 꽤 다릅니다.
뭐냐하면 다케야마 상의 책에서도 확실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영화화하게 된다면 어린이영화가 되어버리고 마니깐
어린이영화가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하고 싶어서 다케야마 상의 허락을
구하고 동화가 아닌 매우 현실적인 버마 전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소설에서는 식인 부족과의 만남이나 여러가지 것들이 있지요. 버마의 풍습같은 것들이
쓰여져 있지만 그러한 것들은 일체 빼버리고 단지 미즈시마와 노래하는 부대에 포인트를
두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승인될 때까지 꽤 기다렸어요. 영화화가 실현되기까지 힘들었지요.
당시 닛카츠 촬영소에서 제작이 되었는데 젊은 배우가 적었습니다. 야스이 군도 큰 역을
아직 못 맡은 상태였고 신인이었죠. 감상적인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신인인데도 자연스런
느낌이 있어서 선택했습니다. 다만 어깨 쪽이 건장한 편이어서 조금 살을 빼라고... 먹지
못한 군인이니깐 그런 주문을 했지요. 캐릭터의 성실한 느낌을 이끌어내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잘 해줬어요.
일본군은 전장에서 죽으려는 작정이었지요. 미즈시마는 어떻게 하든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설득하려고 합니다. 미즈시마 역시 인간이니깐 애를 쓰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매우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지요. 미즈시마는 어떠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컬러로 찍을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다이에이 영화사에는 이스트만 컬러가 들어와 있었어요.
하지만 닛카츠는 일본 코니컬러를 쓰고 있었는데 3원색이 요구되는 필름이었어요. 그걸로
찍으라는 거예요. 그걸 보러갔더니 3줄의 필름이 장착되어 있는데 카메라 크기가 엄청 났어요.
이런 걸 버마에 들고가서 못 찍는다고 스튜디오에 말했어요. 가져갔다가 망가지면 수리를 못하잖아요.
당시 버마라는 곳은 멀어도 엄청 먼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컬러로 찍는 건 관두고
흑백으로 찍기로 했지요. 여러가지 사정으로 버마 로케이션은 못하게 되고 일본내에서 거의
찍게 되었기 때문에 버마로 보이기 위해 애를 썼지요. 버마로 배우들을 데리고 가는 건 불가능했어요.
야스이 군만 데려갈 수 밖에 없었어요. 다른 배우들은 하코네, 이즈 등에서 촬영을 했어요.
그런 것이 화면에 여러가지로 영향을 준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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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는 열대지역이니깐 뜨거운 느낌을 살리려고 했어요. 흑백으로 찍으니깐 되도록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얻을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특별히 고집을 한 것은 렌즈의 선택이었어요.
예를 들어 망원렌즈는 롱 샷을... 와이드앵글 렌즈는 클로즈업 샷에 썼습니다.
그런 것을 때때로 활용했습니다. 카메라 감독의 허락없이는 어려운 점이죠.
그건 서로 협의해가며 했어요.
또다른 주요한 요소는 조명입니다.
조명은 작품에 따라 다르죠. 의도적으로 플랫라이팅(평면조명)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작품의 요구에 따라
앵글 라이팅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것을 했어요.
카메라를 들여다보면서 카메라 감독과 의견을 나누고 그리고 조명 감독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런 과정으로 작업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음악의 경우는 제가 여러가지 주문을 냅니다. 음악만큼은 제가 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다른 부분은 대체로 제가 해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조금 모자라는 점이 있더라도 말이죠.
음악은 아무래도 안 되기때문에 이후쿠베 상에게 부탁을 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냈습니다.
내 의견을 내다보니 충돌도 있었지요. 이후쿠베 상과 다툰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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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했던 것 중 하나가 하프였는데 버마의 하프 소리를 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영화 속 하프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이런 하프로 해보고 민속악기로 해보고 여러가지로
해봤어요. 지금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위해 애를 썼습니다. 노래를 하고 또 하고 굉장히 많이 반복을 했어요.
가장 마음에 든 노래를 담았어요. 아마추어도 끼어있습니다. 성가대의 사람도 있지만
일반사람도, 음치인 사람도 일부러 넣었습니다. 섞어 놓았죠.

버마의 하프가 베니스 영화에 참가했다는 걸 저는 몰랐어요. 닛카츠에서 아무도 얘기해주질 않았습니다.
몰랐지요. 다른 영화를 찍느라 바쁘기도 했고요. 닛카츠의 버마의 하프가 상을 받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저희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말이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르네 클레망의 '목로주점'과
버마의 하프가 상을 다투었어요. 동률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랑프리는 어느 작품도 못 받고
하지만 제 작품은 산 지오르지오 상을 받았어요. 그 때 처음으로 만든 상입니다.
산 지오르지오는 평화를 위해 몸바친 이탈리아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버마의 하프도 평화를 위해
애쓰는 병사에 관한 이야기니깐 연결지점이 있다고 본 것이겠죠. 안됐다고 생각해서 상을 줬는지도 모르죠.
산 지오르지오 상이란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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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영화로 찍을 생각은 없었어요. 버마의 하프는 굉장히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원래 꿈과 같은 이야기를 의도한 높은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만약 그런 상황이 있었을 때
간단히 말해서 부대원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고 한 명의 병사가 버마에 남아서 죽은 전우들을 묻고
위로하려는 굉장히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이토록 위대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희망. 인간을 향한 희망... 거기에 테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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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1959)
http://www.imdb.com/title/tt0053121/

*'들불' 크라이테이온 콜렉션의 이치가와 곤 인터뷰를 번역한 것임.

전쟁

히로시마 부대로 징집이 되었지만 이미 패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감독도 못 되고 전장에서 죽는구나 생각했지요.
슬픈 심정이었지만 가야만 했어요. 갔더니 맹장염이라고 하는거예요.
맹장염은 수술로 금세 치료가 되었는데 그러고는 군에서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운이 좋다면 좋은 것이었어요
당시 어머니와 누나들이 모두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어요.
거기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죠. 피폭을 당한 것이지요.
모두 죽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흘 후 편지를 받았어요.
무사하고 친척집에 있다는 거예요. 히로시마 교외였지요.
바로 가족들을 보러 달려갔어요. 모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영문을 몰라했어요.
집이 방패막이 되어주어서 광선이 직접 닿지 않은게 아닌가 싶어요.
위에서 떨어졌을 때 닿지 않는 각도라는게 있잖아요.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가족들 모두 살아남았어요. 페허가 된 히로시마의 모습을 이 눈으로 보았지요.
당시 히로시마의 현실이라는 건 말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것이었어요.
역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 심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각본과 각색
낫토 상은 시나리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재능이 있으리라곤
자신도 저도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언젠가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대사가 형편 없었어요. 함께 살고 있으니깐 낫토 상에게 대사가 좋은지 나쁜지
읽어봐달라고 했지요. 읽어보더니 나쁘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금 다시 써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시 쓴 그 대사가 아주 좋았어요. 이런 멜로드라마에 쓰기엔 아까울 정도로
무척 좋았어요. 그래서 써달라고 부탁하는게 점차 늘어났어요. 자기 본명으로 하기는
싫다고 해서 와다 낫토라는 이름을 자신이 지었어요. 로버트 도넛트라는 잘 생긴 영국
배우가 있어요. 낫토 상이 그 배우의 팬이었어요. 와다라는 성은 적당히 붙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낫토라는 이름은 도넛트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요. 세련된 이름이지요.

이치가와 곤과 와다 낫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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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은 전쟁이 크나큰 죄악이라는 것을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는 소설이지요.
전쟁은 끝나고 평화로워졌지만 기회가 있을 적마다 언급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영화화한 것입니다. 다소 관념적으로 들리긴 해요. 스튜디오에서는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요. '들불'이라는 제목만으로 허가가 내려왔어요. 치열한 전투가 가득찬 그런
영화로 짐작한 듯 싶어요. 원작소설의 주인공은 크리스찬으로 부대의 동료들에게 그가
크리스찬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그런 상황의 부대이지요. 그런 종교적인 부분을
없애고 라스트도 바꿨어요. 여기저기 달라진 부분이 아주 많아요. 오카 상은 시나리오를
읽고는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직접 촬영이나 그런 것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전부 저에게
맡겨 주셨지요.

원작자 오카 쇼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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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세 사람이 주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요. 후나코시 에이지, 타키자와 오사무, 믹키 커티스
세 사람의 연기지요. 후나코시 에이지는 처음부터 이 사람이라고 염두에 두었어요. 타키자와 상의
역할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앉아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믹키 커티스 경우는 그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상당히 마른 체형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 역할을 맡기자고 했어요.

믹키 커티스 Mickey Cu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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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거의 리허설을 하지 않아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지만 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할
때가 훨씬 많아서 거의 하지 않았지요. 당일 현장에서 배우에게, 다들 어떤 장면인지는 알고 있으니깐
오늘 장면은 이런 뉘앙스로 가자고 말합니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제작준비를 하는 사이에 후나코시 에이지에게 두 달 간의 시간이 있었어요.
인물이 어쨌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기아상태이니깐 초췌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촬영 첫 날. 이즈에서 촬영을 했는데 언덕이 있고 너머에서 그의 모습이 보여지는 장면이었어요.
'준비, 액션' 카메라를 돌렸지요. 모습이 나타났지요. '컷, 오케이' 롱 샷이었어요. 그런데 후나코시가
일어나지 않는거예요. '어이... 어떻게 된거야?' 살펴보라고 했어요. 우리 모두 달려갔더니 후나코시가
움직이지 않는거예요. '어떻게 된거지... 아픈건가' 걱정이 되어서 머물고 있던 숙소로 옮겼어요.
의사가 와서 진찰을 했어요. 그랬더니 영양실조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부인에게 연락을 해서 와달라고
했어요.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어요. 2주일간 먹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바보같은 짓을 하냐고 엄청 화를
냈어요. 연기로 해줘야지 실제로 그렇게까지 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후나코시는 그런 배우였어요.
그래서 촬영은 두달 간 연기가 되었어요. 열정이 지나쳐서 촬영 중지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어요. 화가 나면서도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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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후나코시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걷게 하고 특별한 지시를
내렸어요. 걷는 모습에서 캐릭터의 포인트를 두었지요.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인육을 먹는 장면이었어요. 그것은 원작에는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인육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원작에서는 확실치 않아요. 역시 먹는 장면이 보여지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주인공이 인육을 먹으면 거기서 주인공의 문제는 해결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이가 빠져서 먹지 못하는 것으로 하면 카니발리즘이라는 드라마로서
가장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가 빠지는 것이 한계이지요.
그러니깐 인간이란 존재가치가 있는게 아니겠는가라는 것이죠.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지요.
결국 어느 정도로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낫토 상이 그런 생각을 낸 것인데 이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의 일본영화계에서도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다이에이 영화는 전부 컬러 작품입니다.
하지만 '들불'은 컬러로 찍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흑백으로 찍고 싶다고, 이스트만의 흑백필름으로
찍고 싶다고 했어요. 그만큼의 예산을 원한다고 했어요. 한달간의 회의 끝에 결국 승인을 얻어냈어요.
이스트만의 흑백필름으로 찍었어요. 컬러로는 실패할 수가 있기때문에 흑백이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이죠.
전부 일본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로케이션은 고텐바, 이즈, 하코네, 도쿄내의 공원 일부에서 이뤄졌어요.
촬영은 40여일 정도 걸렸는데 당시엔 일반적인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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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마지막 장면에서 타무라가 들불을 보고서는 그건 농부들이 들판을 태우는게 아닐까하고... 저 곳에는
평온함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서는 그 쪽을 향해 걸어가지요. 하지만 날아드는 총탄에 맞고서
타무라는 어느 순간 쓰려져서 숨이 끊어집니다. 역시 주인공은 죽어야 한다고 봤어요.
인간으로서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주제를 구체적으로 보일 심산으로
찍었어요. 역시 전쟁은 절대적인 죄악이라는 주제이지요. 분명 오카 상도 그런 생각으로 쓴 게 아닐까요.
그것이 지금에 와서도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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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 쇼헤이 - 들불 野火
http://www.imdb.com/title/tt0053121/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883968

전장이라는 극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카니발리즘과 인간다움을 끝까지 부여잡는
일본군 병사 타무라의 내면의 풍경을 그려낸 오카 쇼헤이의 전쟁문학 '들불'.

들불 (1959, 이치가와 곤) 오프닝


들불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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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mdb.com/title/tt1077089/

국내 극장가를 찾은 미타니 코키의 '매직 아워'에는 지금껏 함께 해왔던
단골 배우들이 주연, 조연, 카메오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 이치가와 곤 감독의 마지막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건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 영화감독으로 출연한 이치가와 곤 감독. 주인공 무라타(사토 코이치)가
대역 연기를 맡은 영화 촬영 장면이었죠. 올해 이치가와 곤 감독이 세상을 뜨셨던
터라 영화감독 역할이 남다른 느낌을 자아내네요.



미타니 코키 감독 역시 이치가와 곤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이치가와 곤 감독의 유작이랄 수 있는 '이누가미 일족 (2006)'에서 여관 주인 역으로
나왔던 것이죠. 잠시잠깐 코미디언 이홍렬 씨 분위기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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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 겪은 일은 아니지만 조연에 불과한 아야세 하루카가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포스터는 불만입니다.
저도 하루카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는 후카츠 에리의 자리 아닌가...!! ^^ '매직 아워'에는 미타니 코키의
전작 '우쵸텐 호텔'에 이어 동일한 역할로 등장한다고 추정되는 한 명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거리에서 라이브를 하다가 후카츠 에리에게 돈을 뜯기는 카토리 싱고. 깜짝 출연으로 재미를 주는 장면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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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 이치가와 곤 이야기 (2006) 한글자막
얼마전 타계한 이치가와 곤 감독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곁들여서 만들어 본 한글자막입니다.
이치가와 곤 감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피력하는 이와이 감독의 마지막 말들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이치가와 곤 감독의 일대기를 이와이 슌지다운 감수성으로 그려낸 헌정영화.

업데이트
v1.01 2008. 02. 23.
선물을 준게 --- 선물을 받은게
패로디 --- 패러디
매우 보슬보슬 --- 보슬보슬
재미있어!' --- '재미있어!'
2층에 --- 2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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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치가와 곤 감독이 폐렴으로 타계하셨습니다.
매 작품 감상하면서 탁월한 영상미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즐거운 경험이 생각나는데
슬픈 소식이네요. 92세의 연세. 불과 얼마전까지도 현역으로서 작업을 하셨다는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13일 타계한 영화감독 이치가와 곤 (향년 92세). 독자적인 영상미학을 추구,
다수 명작을 탄생시킨 거장이었다. 1969년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케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 등의 감독과 함께 세계를 놀래킬 영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사기
(네명의 기수)의 회'를 결성하였다. 이치가와 곤 감독의 사망으로 일본영화사를 빛낸
4인의 감독 모두 세상을 뜨게 되었다.'

十三日に亡くなった映画監督の市川崑さん(享年92)。独自の映像美を追い続け、多くの名作を生んだ巨匠だった。一九六九年には、黒沢明、木下恵介、小林正樹の三監督とともに、世界が注目する映画を作ろうと「四騎の会」を結成した市川さんだったが、その死で映画史に輝く名監督だったメンバー全員が逝ってしまった。Tokyo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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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역사
'이치가와 곤 (1915년11월20일 - 2008년2월13일 일본 미에현 출신)
중학교 중퇴, 1933년 J.O. 스튜디오(이후 토호로 합병)에 애니메이터로 입사.
1948년 동료 시나리오 작가 와다 나토와 결혼, 그해 '꽃이 피다'로 감독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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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수상내역
1956년 '버마의 하프' 베니스 영화제 '산 죠르지오' 상
1959년 '들불' 로카르노 영화제 그랑프리
1960년 '열쇠'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상
1966년 '도쿄 올림픽' 영국 아카데미 플래허티 다큐멘터리상
2000년 베를린 특별공로상
2001년 몬트리올영화제 평생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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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원합니다'


'이누가미 일족'을 완벽한 영화 교과서라고 평한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이누가미 일족 2006'에 발맞춰 제작했던 이치가와 곤 감독다큐멘터리
'이치가와 곤 이야기'. 재능있는 후배감독의 이러한 헌정영화도 보시고
막바지에 큰 복 받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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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가운데)와 이치가와 곤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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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영화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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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리메이크 출연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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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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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부러진 병사들의 시신을 보고서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승려가 되는 '하프를 든 병사'에 관한 '버마의 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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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10인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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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연작 중 '악마의 공놀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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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미에 대한 동경과 말을 더듬는 자신에 대한 자학이 맞물려 금각사에 불을 지르게 되는 청년에 관한 미시마 유키오 원작 '불꽃'. 오래전 자주 뵙던 노교수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영화여서 남다른 기분으로 봤습니다. ^^ '젊었을 적 봤던 일본영화가 있는데 제목은 모르겠고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는 그 청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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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조 변화 (2008)

TV 2008. 1. 14. 01:12
2008 NHK 신년 특집극으로 방영된 '유키노조 변화 雪之丞変化'입니다. 1935년에 기누가사
테이노스케 감독이, 1963년에는 이치가와 곤 감독이 각각 영화화한 바 있는데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하세가와 카즈오의 열연이 인상깊었던 63년 버전이 기억에 남아있던터라 손꼽아 고대하던
특집극이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에도 가부키극의 온나가타(여자 역을 하는
남자배우)인 나카무라 유키노조. 그의 부모는 속임을 당하고 모진 고초 끝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원수인 '도베 산사이', '나가사키야', '히로미야' 등의 소재를
알게 된 유키노조는 '도베 산사이'의 딸인 '나미지'에게 접근하여 복수의 칼을 내리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한 남자의 냉혹한 복수담이면서 또한 '나미지'라는 비운의 여성이 연계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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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조 변화


나카무라 유키노조/야미타로 (타키자와 히데아키)
타키자와 히데아키가 주인공인 '유키노조'와 의적인 '야미타로'의 1인 2역을 연기합니다. 영화
에서는 하세가와 카즈오가 1인 2역을 했었는데 여성적이고 침착한 유키노조와 쾌활한 야미타로로
확연히 구분되었던 영화와는 달리 특집극에서는 두 인물 모두 음울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나미지 (토다 에리카)
'도베 산사이'의 딸 '나미지' 역을 토다 에리키가 연기합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매달리는
지고지순 캐릭터여서 누가 맡더라도 운신의 폭은 크지 않으리라 생각되네요. 에리카 다음부터 부디
눈에 너무 힘주지 말지어다 ^^

오하츠 (다카오카 사키)
야미타로와 커플로 등장하는 여자 도둑인데 특집극에서 비중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마츠우라야 세이자에몬 (오스기 렌)
어린 아들에게 복수를 부탁하며 목숨을 끊는 유키노조의 부친.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와 진행을 보이는 특집극을 보는 재미가 적지 않았는데 몇가지 차이점에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유키노조와 나미지 사이의 애뜻함을 보여주는 영화와는 달리 유키노조가
목적을 위해 그녀를 이용하려는 잔혹한 면을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감초 캐릭터인
'야미타로'와 '오하츠'는 로맨스 코미디의 티격태격하는 커플처럼 요소 요소에 유쾌한 웃음을 선사
하는데 특집극에서는 극 자체가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하면서 '야미타로'와 '오하츠' 마저도 유머가
사라지고 무게잡으며 등장합니다. 가부키 극장에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나오면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이제부터 두 사람의 활약도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더이상 그러한 모습을 볼 수가
없더군요. '야미타로'가 야습을 당하는 유키노조를 돕게 되면서 그와 친분을 지니게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과거를 지닌 그의 복수심을 눈치채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서 그를 돕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야미타로에 대한 결말이 영화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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