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가와 곤 인터뷰 ['버마의 하프']

저는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는데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영화를 보고는
그림을 영화에 결합시킨 것이 인상 깊어서 이렇게 멋진게
이 세상에 있구나 싶었지요. 그럼 월트 디즈니가 되자고 마음 먹고서는
일본에서는 소규모 프로덕션이었던 시절인데... 지금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이지만
당시엔 만화영화라고 불렸는데... JO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만화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그 곳에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이 여러 영화를
찍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는 이제는 디즈니가 아니고 야마나카 사다오가
되고 싶어졌지요. 극영화로 옮기게 되었어요.

야마나카 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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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미국영화 그리고 프랑스 영화... 일본영화로부터도...
구로사와 감독이나 미조구치 감독의 영화를 공부했지요. 외국에서는 루비치, 카프라
정말 훌륭한 감독들이 당시엔 많았어요. 정말 즐겁게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다케야마 미치오의 원작을 읽었을 때 이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화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명이랄까 하늘의 목소리랄까 왠지 그런 느낌이었어요.
잡담같은 이야기지만 다케야마 상은 소설에서 쓴 버마에는 가본 적도 없어요.
가본 적이 없는데도 그렇게도 멋진 버마의 이야기가 쓰여졌어요.
처음엔 중국을 배경으로 쓰려고 했다더군요. 미군병사와 일본병사가 합창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노래가 중국에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본 적도 없는 버마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버마의 하프'란 소설을 쓴 것이죠. 다케야마 상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감동했어요.

낫토 상이 혼자서 굉장히 빨리 시나리오를 완성했어요. 원작과는 영화가 꽤 다릅니다.
뭐냐하면 다케야마 상의 책에서도 확실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영화화하게 된다면 어린이영화가 되어버리고 마니깐
어린이영화가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하고 싶어서 다케야마 상의 허락을
구하고 동화가 아닌 매우 현실적인 버마 전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소설에서는 식인 부족과의 만남이나 여러가지 것들이 있지요. 버마의 풍습같은 것들이
쓰여져 있지만 그러한 것들은 일체 빼버리고 단지 미즈시마와 노래하는 부대에 포인트를
두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승인될 때까지 꽤 기다렸어요. 영화화가 실현되기까지 힘들었지요.
당시 닛카츠 촬영소에서 제작이 되었는데 젊은 배우가 적었습니다. 야스이 군도 큰 역을
아직 못 맡은 상태였고 신인이었죠. 감상적인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신인인데도 자연스런
느낌이 있어서 선택했습니다. 다만 어깨 쪽이 건장한 편이어서 조금 살을 빼라고... 먹지
못한 군인이니깐 그런 주문을 했지요. 캐릭터의 성실한 느낌을 이끌어내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잘 해줬어요.
일본군은 전장에서 죽으려는 작정이었지요. 미즈시마는 어떻게 하든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서 설득하려고 합니다. 미즈시마 역시 인간이니깐 애를 쓰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매우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지요. 미즈시마는 어떠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컬러로 찍을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다이에이 영화사에는 이스트만 컬러가 들어와 있었어요.
하지만 닛카츠는 일본 코니컬러를 쓰고 있었는데 3원색이 요구되는 필름이었어요. 그걸로
찍으라는 거예요. 그걸 보러갔더니 3줄의 필름이 장착되어 있는데 카메라 크기가 엄청 났어요.
이런 걸 버마에 들고가서 못 찍는다고 스튜디오에 말했어요. 가져갔다가 망가지면 수리를 못하잖아요.
당시 버마라는 곳은 멀어도 엄청 먼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컬러로 찍는 건 관두고
흑백으로 찍기로 했지요. 여러가지 사정으로 버마 로케이션은 못하게 되고 일본내에서 거의
찍게 되었기 때문에 버마로 보이기 위해 애를 썼지요. 버마로 배우들을 데리고 가는 건 불가능했어요.
야스이 군만 데려갈 수 밖에 없었어요. 다른 배우들은 하코네, 이즈 등에서 촬영을 했어요.
그런 것이 화면에 여러가지로 영향을 준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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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는 열대지역이니깐 뜨거운 느낌을 살리려고 했어요. 흑백으로 찍으니깐 되도록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얻을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특별히 고집을 한 것은 렌즈의 선택이었어요.
예를 들어 망원렌즈는 롱 샷을... 와이드앵글 렌즈는 클로즈업 샷에 썼습니다.
그런 것을 때때로 활용했습니다. 카메라 감독의 허락없이는 어려운 점이죠.
그건 서로 협의해가며 했어요.
또다른 주요한 요소는 조명입니다.
조명은 작품에 따라 다르죠. 의도적으로 플랫라이팅(평면조명)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작품의 요구에 따라
앵글 라이팅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것을 했어요.
카메라를 들여다보면서 카메라 감독과 의견을 나누고 그리고 조명 감독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런 과정으로 작업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음악의 경우는 제가 여러가지 주문을 냅니다. 음악만큼은 제가 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다른 부분은 대체로 제가 해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조금 모자라는 점이 있더라도 말이죠.
음악은 아무래도 안 되기때문에 이후쿠베 상에게 부탁을 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냈습니다.
내 의견을 내다보니 충돌도 있었지요. 이후쿠베 상과 다툰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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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했던 것 중 하나가 하프였는데 버마의 하프 소리를 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영화 속 하프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이런 하프로 해보고 민속악기로 해보고 여러가지로
해봤어요. 지금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위해 애를 썼습니다. 노래를 하고 또 하고 굉장히 많이 반복을 했어요.
가장 마음에 든 노래를 담았어요. 아마추어도 끼어있습니다. 성가대의 사람도 있지만
일반사람도, 음치인 사람도 일부러 넣었습니다. 섞어 놓았죠.

버마의 하프가 베니스 영화에 참가했다는 걸 저는 몰랐어요. 닛카츠에서 아무도 얘기해주질 않았습니다.
몰랐지요. 다른 영화를 찍느라 바쁘기도 했고요. 닛카츠의 버마의 하프가 상을 받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저희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말이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르네 클레망의 '목로주점'과
버마의 하프가 상을 다투었어요. 동률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랑프리는 어느 작품도 못 받고
하지만 제 작품은 산 지오르지오 상을 받았어요. 그 때 처음으로 만든 상입니다.
산 지오르지오는 평화를 위해 몸바친 이탈리아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버마의 하프도 평화를 위해
애쓰는 병사에 관한 이야기니깐 연결지점이 있다고 본 것이겠죠. 안됐다고 생각해서 상을 줬는지도 모르죠.
산 지오르지오 상이란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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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영화로 찍을 생각은 없었어요. 버마의 하프는 굉장히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원래 꿈과 같은 이야기를 의도한 높은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만약 그런 상황이 있었을 때
간단히 말해서 부대원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고 한 명의 병사가 버마에 남아서 죽은 전우들을 묻고
위로하려는 굉장히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이토록 위대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희망. 인간을 향한 희망... 거기에 테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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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va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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