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1959)
http://www.imdb.com/title/tt0053121/

*'들불' 크라이테이온 콜렉션의 이치가와 곤 인터뷰를 번역한 것임.

전쟁

히로시마 부대로 징집이 되었지만 이미 패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감독도 못 되고 전장에서 죽는구나 생각했지요.
슬픈 심정이었지만 가야만 했어요. 갔더니 맹장염이라고 하는거예요.
맹장염은 수술로 금세 치료가 되었는데 그러고는 군에서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운이 좋다면 좋은 것이었어요
당시 어머니와 누나들이 모두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어요.
거기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죠. 피폭을 당한 것이지요.
모두 죽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흘 후 편지를 받았어요.
무사하고 친척집에 있다는 거예요. 히로시마 교외였지요.
바로 가족들을 보러 달려갔어요. 모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영문을 몰라했어요.
집이 방패막이 되어주어서 광선이 직접 닿지 않은게 아닌가 싶어요.
위에서 떨어졌을 때 닿지 않는 각도라는게 있잖아요.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가족들 모두 살아남았어요. 페허가 된 히로시마의 모습을 이 눈으로 보았지요.
당시 히로시마의 현실이라는 건 말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것이었어요.
역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 심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각본과 각색
낫토 상은 시나리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재능이 있으리라곤
자신도 저도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언젠가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대사가 형편 없었어요. 함께 살고 있으니깐 낫토 상에게 대사가 좋은지 나쁜지
읽어봐달라고 했지요. 읽어보더니 나쁘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금 다시 써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시 쓴 그 대사가 아주 좋았어요. 이런 멜로드라마에 쓰기엔 아까울 정도로
무척 좋았어요. 그래서 써달라고 부탁하는게 점차 늘어났어요. 자기 본명으로 하기는
싫다고 해서 와다 낫토라는 이름을 자신이 지었어요. 로버트 도넛트라는 잘 생긴 영국
배우가 있어요. 낫토 상이 그 배우의 팬이었어요. 와다라는 성은 적당히 붙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낫토라는 이름은 도넛트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요. 세련된 이름이지요.

이치가와 곤과 와다 낫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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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은 전쟁이 크나큰 죄악이라는 것을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는 소설이지요.
전쟁은 끝나고 평화로워졌지만 기회가 있을 적마다 언급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영화화한 것입니다. 다소 관념적으로 들리긴 해요. 스튜디오에서는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요. '들불'이라는 제목만으로 허가가 내려왔어요. 치열한 전투가 가득찬 그런
영화로 짐작한 듯 싶어요. 원작소설의 주인공은 크리스찬으로 부대의 동료들에게 그가
크리스찬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그런 상황의 부대이지요. 그런 종교적인 부분을
없애고 라스트도 바꿨어요. 여기저기 달라진 부분이 아주 많아요. 오카 상은 시나리오를
읽고는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직접 촬영이나 그런 것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전부 저에게
맡겨 주셨지요.

원작자 오카 쇼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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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세 사람이 주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요. 후나코시 에이지, 타키자와 오사무, 믹키 커티스
세 사람의 연기지요. 후나코시 에이지는 처음부터 이 사람이라고 염두에 두었어요. 타키자와 상의
역할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앉아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믹키 커티스 경우는 그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상당히 마른 체형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 역할을 맡기자고 했어요.

믹키 커티스 Mickey Cu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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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거의 리허설을 하지 않아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지만 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할
때가 훨씬 많아서 거의 하지 않았지요. 당일 현장에서 배우에게, 다들 어떤 장면인지는 알고 있으니깐
오늘 장면은 이런 뉘앙스로 가자고 말합니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제작준비를 하는 사이에 후나코시 에이지에게 두 달 간의 시간이 있었어요.
인물이 어쨌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기아상태이니깐 초췌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촬영 첫 날. 이즈에서 촬영을 했는데 언덕이 있고 너머에서 그의 모습이 보여지는 장면이었어요.
'준비, 액션' 카메라를 돌렸지요. 모습이 나타났지요. '컷, 오케이' 롱 샷이었어요. 그런데 후나코시가
일어나지 않는거예요. '어이... 어떻게 된거야?' 살펴보라고 했어요. 우리 모두 달려갔더니 후나코시가
움직이지 않는거예요. '어떻게 된거지... 아픈건가' 걱정이 되어서 머물고 있던 숙소로 옮겼어요.
의사가 와서 진찰을 했어요. 그랬더니 영양실조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부인에게 연락을 해서 와달라고
했어요.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어요. 2주일간 먹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바보같은 짓을 하냐고 엄청 화를
냈어요. 연기로 해줘야지 실제로 그렇게까지 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후나코시는 그런 배우였어요.
그래서 촬영은 두달 간 연기가 되었어요. 열정이 지나쳐서 촬영 중지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어요. 화가 나면서도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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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후나코시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걷게 하고 특별한 지시를
내렸어요. 걷는 모습에서 캐릭터의 포인트를 두었지요.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인육을 먹는 장면이었어요. 그것은 원작에는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인육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원작에서는 확실치 않아요. 역시 먹는 장면이 보여지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주인공이 인육을 먹으면 거기서 주인공의 문제는 해결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이가 빠져서 먹지 못하는 것으로 하면 카니발리즘이라는 드라마로서
가장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가 빠지는 것이 한계이지요.
그러니깐 인간이란 존재가치가 있는게 아니겠는가라는 것이죠.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지요.
결국 어느 정도로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낫토 상이 그런 생각을 낸 것인데 이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의 일본영화계에서도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다이에이 영화는 전부 컬러 작품입니다.
하지만 '들불'은 컬러로 찍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흑백으로 찍고 싶다고, 이스트만의 흑백필름으로
찍고 싶다고 했어요. 그만큼의 예산을 원한다고 했어요. 한달간의 회의 끝에 결국 승인을 얻어냈어요.
이스트만의 흑백필름으로 찍었어요. 컬러로는 실패할 수가 있기때문에 흑백이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이죠.
전부 일본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로케이션은 고텐바, 이즈, 하코네, 도쿄내의 공원 일부에서 이뤄졌어요.
촬영은 40여일 정도 걸렸는데 당시엔 일반적인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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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마지막 장면에서 타무라가 들불을 보고서는 그건 농부들이 들판을 태우는게 아닐까하고... 저 곳에는
평온함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서는 그 쪽을 향해 걸어가지요. 하지만 날아드는 총탄에 맞고서
타무라는 어느 순간 쓰려져서 숨이 끊어집니다. 역시 주인공은 죽어야 한다고 봤어요.
인간으로서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주제를 구체적으로 보일 심산으로
찍었어요. 역시 전쟁은 절대적인 죄악이라는 주제이지요. 분명 오카 상도 그런 생각으로 쓴 게 아닐까요.
그것이 지금에 와서도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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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va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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