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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야구단 [부산 구덕야구장 2010. 2. 22.]
조만간 이사를 해야하는 탓에 요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축 처져있는 기분을 살릴 겸해서 천하무적 야구단의 시합이 있는
구덕야구장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1시가 되어서야 뒤늦게 지하철을
탔는데 다행히 예정으로 알고 있던 1시가 아닌 2시부터 시합이 진행되어서
연습하는 모습부터 한참을 지켜보다가 외야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전으로 뛰던 마르코와 동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탁재훈과 조동혁이
백업멤버로 타순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르코와 동호는 경기 후반에
교체되어 출전을 하면서 잠시 모습을 보였다. 방송을 통해 재미있게 봤던
천하무적 야구단의 경기였지만 막상 경기장에 앉아 관람하는 입장에서
극히 아마추어 실력을 보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재미는 아니었다.
관중석을 꽉 채우던 관중들도 비슷했던지 혹은 잠시 연예인을 볼 생각이었던
탓인지 회를 거듭하면서 많은 수의 관중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경기 막바지엔
불어오는 바람이 사뭇 추위를 느끼게 해서 더욱 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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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gh! A Music War (1981)

음악 2010. 2. 3. 21:44
http://www.imdb.com/title/tt0138902/
http://en.wikipedia.org/wiki/Urgh!_A_Music_War

고교시절 즐겨보던 록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Urgh! A Music War'라는 영상물이다.
근래 워너에서 DVD-R 형태로 판매를 한다고 들었는데 말끔한 DVD 패키지로 모습을 보이진 않아서
정식출시가 되었으면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대에 활약하던 펑크, 뉴웨이브, 신스팝, 레개밴드
들의 라이브를 담고 있다.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한데 Gang of Four, Police, Steel Pulse, XTC, UB40,
Oingo Boingo, Wall of Voodoo, Gary Numan, OMD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양한 팀의 출연만큼
무대 퍼포먼스가 각각 색다르고 보고 듣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뉴웨이브 사운드'라는 단순한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된 바 있다. 이 비디오를 볼 때가 펑크와
레개 음악에 푹 빠졌던 때여서 흔한 말로 테이프 늘어지도록 돌려봤던 녀석이다. 이제는 비디오를 구동
시키지 못해 먼지만 덮어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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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팀은 Gang of Four였다. Gang of Four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기도 한데
기타의 독특한 퍼포먼스는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가끔 무력한 기분이 들적엔 Gang of Four의 음악을 듣곤
하는데 그들의 기타와 베이스는 언제나 흥겹다.



UB40



Dead Kennedys



Joan Jett and the Black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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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5800 익뮤 충전거치대가 없어서 만들어봤다. 동봉되어 있는 노키아 충전기로 충분히
충전해서 쓰고 있는터라 거치대의 필요성은 크게 못 느꼈는데 가끔 쓰임이 있을지도 모르고
자원재활용 차원에서 만들어 본 것이다.

기존에 쓰던 휴대폰이 없었으니 당연히 기존 충전기나 거치대가 없었는데 이사가는
이웃집에서 버려놓은 충전거치대를 발견, 재활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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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 세 개를 뽑아내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한가지 문제가 노키아에 맞는 단자를 만드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추 비슷한 크기의 110V 콘센트에서 뽑아낸 단자를 다듬어서 세 개를 만들고
글루 액으로 전화카드 위에 고정을 시켰다. 집에 글루건도 없고 당연히 글루 액도 없어서 PC 파워서플
라이 내부에 딱딱하게 굳어있는 글루 액 덩어리를 떼어낸 다음 인두로 지져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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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콘센트를 밑에 받치고 전기테이프로 둘둘 말았다. 글루 액이 풍족하게 있었더라면
거치대 안 쪽으로 단자를 집어넣어 고정하면 전기테이프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재활용이 목적인데 돈 들여서 글루건을 살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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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완성판 노키아 충전거치대 java 1호. ㅡ.ㅡ;;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으로 빨리 완충되는 노키아 기본충전기(890mA)에 비해 1시간 반 정도가
더 소요되어야 완충이 된다.(700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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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버린 꽃 / 마른 꽃 Pale Flower 乾いた花' DVD에 수록된 감독 인터뷰를 옮긴 것임
http://www.imdb.com/title/tt0056327/



진로수정

어렸을 적 다른 아이들처럼 문학이나 옛날 이야기에 가슴 뛰던 소년시절이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 특히 물리학을 좋아했습니다. 생활수단으로 과학분야 쪽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45년 15살 때 일본이 전쟁에서 졌습니다. 이건 저에게 일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문화와 전통은 붕괴했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어야 할 신들이 파괴가 되었습니다. 물리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 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다시 한 번 문학, 영화, 연극 등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쇼치쿠 뉴웨이브
우리들이 촬영소에 들어갔을 때가 모두 20살이나 23살 때였습니다. 제 위에는 이마무라 쇼헤이라는 거장이 있었습니다. 제 바로 밑에는 오시마 나기사, 야마다 요지, 요시다 요시시게가 있었습니다. 굉장한 재능들이 제 주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조감독으로 참여한 영화들은 우리들에게 굉장히 멍청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로는 감독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는 감독이 되려는 걸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오시마 나기사와 다른 감독들은 이런 현상을 헤쳐나가려는 무브먼트를 만들려는 노력을 했습니다.그 때 저는 속세를 떠난 사람 마냥 촬영이 끝나면 근처 바닷가에서 매일 수영을 했습니다. 제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오즈 야스지로가 이젠 굉장히 노쇠해버렸다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존경했던 거장 오즈 야스지로와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작품이 반복적인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당시의 권위와 같았습니다만 그분들과는 다른 것을 찾지 않으면 우리들만의 세계를 열지 못하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세대가 대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소의 방식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들이 27, 28살 무렵 모두 그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들에게 연출기회가 왔을 때 우리 시나리오로 우리 영화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뉴웨이브라고 이름 붙여진 무브먼트가 되었습니다.

신인감독
당시 제가 쇼치쿠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쇼치쿠가 다루기엔 껄끄러운 것이라 여겨서 독립프로덕션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쇼치쿠에서는 제가 쇼치쿠의 전통에서 꽤 떨어져 있다는 걸 파악하고서 포기를 한 상태였습니다. 동시에 우리들의 새로운 시도가 늙은 쇼치쿠를 다시 생생하게 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품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와 다른 일련의 감독들이 젊었을 때 쇼치쿠는 그들에게 연출기회를 줬고 굉장한 영화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한 전례가 우리를 도왔다고 봅니다. 쇼치쿠의 틀에 박힌 스탭이 아닌 쇼치쿠의 밖에 있는 우리들의 태도를 지켜봐줬습니다.

일본의 정체성
일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미소 냉전 사이에서 끼어있고 우리들은 의식이나 삶의 가치를 찾아내기 힘든 세대였다고 생각합니다. 폐쇄적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두 명의 주인공 캐릭터의 갈증, 작가의 갈증 그리고 저의 갈증으로 굉장히 일치한 영화였습니다. 그 당시까지 정체성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갈증이 드러나고 있었다고 봅니다. 정체성이라는 말이 태어나기 직전의 시기였습니다.

고독과 허무주의
저는 '말라버린 꽃'의 원작자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정치적인 시선과 닮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야쿠자는 절체절명의
충성심을 요구합니다. 일본에서 '기리'와 '닌조'라고 합니다. 야쿠자가 살아가는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미소가 냉전 중이고 일본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와 같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외로운 늑대같은 사내가 있고 야쿠자의 분쟁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냉전상황을 야쿠자 영화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오야붕을 모시지 않는 고립을 선택하는,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일상이 붕괴되어 버리는 것이 이 영화의 야쿠자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기리와 닌조를 벗어난, 야쿠자의 모럴이 전혀 없는 허무가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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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
암살자가 누군가를 살해하려 할 때 암살장면보다 암살의 시간이 다가오는 암살자가 어떻게 일상을 보낼까가 제 흥미를 끌었습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이 멍하니 있는 일상을 '말라버린 꽃'에서 잡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케베에게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모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물중독자 캐릭터는 우리들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입니다. 일본영화에서는 오래도록 일반관객에게 금기시되던 절망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인간은 죽는다, 타락한다, 구원할 힘도 때로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케베에게 존재하는 실존이 우리 사회의 모럴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에서 강렬하고 씁쓸한 맛을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협력
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쓴 파트너는 바바 마사루였습니다. 상당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굉장히 위트있는 대사를 써냈습니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도 마찬가지로 하겠지만 도박장 장면을 한 줄의 대사로 깔끔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한 줄을 100 컷으로 구성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굉장히 세세한 도박장 장면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 장면들이 이야기를 감춰버립니다. 자신이 생각한 플롯이 안 보인다며 시사회가 끝나자 화가 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영화가 상영금지된 사유는 아니었습니다. 도박장면이 너무 많아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쇼치쿠는 모럴이 높은 회사니깐 이런 안티모럴 영화는 개봉할 수 없었습니다. 개봉시키지 못한 건 제 책임입니다.

말라버린 꽃에 대한 반응
저의 다른 영화에 참여했던 테라야마 슈지의 각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처럼 시나리오가 이해불능이라는 불만도 있었고, 다케미츠 토루의 음악이 일반대중에게는 너무 난해하다는 등 영화가 완성된 후 수많은 불만의견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성공적이라는 평도 있어서 회사로서는 꽤 복잡한 심경이었을 겁니다. 영화가 완성이 되고 상영금지가 되었습니다. 검열통과가 실패했고 쇼치쿠 관객에게 맞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영은 금지되었습니다. 제 영화가 상업영화를 목표로 하는 회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 나만의 독립프로덕션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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