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핀: The Juche Idea (2008)
http://www.imdb.com/title/tt123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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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젊은이라면 君が若者なら' (1970)
http://www.imdb.com/title/tt0203620/

영화의 시작
독립프로덕션인 '신성영화'라는 영화사가 계속 의식하고 만들어 오던게 무엇이냐면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 속
에서 어떤 가능성이라는 것을 발견해서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TV 드라마 중에서 '젊
은이들'이라는 시리즈가 방영되었을 때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미 인기를 얻은 TV 드라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들'과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 말하자면 하나의 가능성을 젊은이들에게서 발견해서 그들
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 라는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생각하고 있던 어떤 젊은이들
의 범죄성향같은 것을 포함한 다른 방향성을 프로덕션에서도 찾고 있었던 듯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젊은이

프로듀서와 가장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프로듀서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을 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현실이라는 것은 너무나 냉엄합니다. '그대가 젊은이라면'을 만들 때 이미
그런 냉엄한 현실에 우리들이 놓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가지로
분투를 합니다. 집단취직이라는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 여러가지 분투를 하지만 아무래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에는 친구가 범한 범죄에 말려들어 자신들도 어쩔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친구의 일이라면 그렇게 절망적이진 않습니다. 자신의 일이라면 또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배틀로얄'
의 경우는 냉엄하고 상황에 몰리게 되는 젊은이들. 게다가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 각자가 필
사적으로 저항해 나갑니다. 그것이 '배틀로얄'의 테마였습니다. '그대가 젊은이라면'이 그보다 덜 절망적이라고 하
는 건 상황이 그렇다기 보다는 적어도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 속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하나의 끊임없는 흐름이었습니다. 범죄는 많고 살아가기 힘든 시대
였지만 사람을 믿으려고 하는 마음만큼은 남아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엇습니다. 아이가 어른을
믿지 못하게 되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학교, 선생이나 선배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배틀
로얄'의 상황이고 '그대들이 젊은이라면'은 신뢰를 회복하려고 하는, 친구 서로가 신뢰를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 영화
의 모티프이며 테마입니다. 저도 그런 드라마를 열심히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점이 있다고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희망
'그대가 젊은이라면'에서 젊은이들이 문제를 맞닥드리게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 '배틀 로얄'
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렇게 받아들인 것을 관객은 어떻게 받
아들일까를 봤습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 나름대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만든 보람도 있고 특히 '배틀로얄'의 경우
는 넓은 범위로, 예를 들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여러 반응이 있어서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까 생
각해야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상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것을 작품
속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입니다. 1950년대 이래로 내 작품 속에서 다뤄왔던 공포, 그에 대한 좌절감 같은 것
을 다루면서도 지금의 아프칸 문제, 테러리즘의 문제에 유효한 답을 찾아서 관객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굉장한 어
려운 상황으로 무척 힘든 영화연출 상황에 몰려 있다는 의식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관객과 해외관
객에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광을 받고 있는지도 실감하고 있진 않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이
제부터 어떻게 다뤄낼까? 대답을 마련하기엔 다소 늦었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나이가 되어서는 쉽지 않다는 생각
도 듭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의문에 대답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
해 지금 악전고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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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四つの恋の物語 第二話 別れも愉し [옴니버스 '네 개의 사랑이야기 중 2화 '헤어짐도 즐겁다']
http://www.imdb.com/title/tt0040010/
http://www.jmdb.ne.jp/1947/bw000160.htm
출연: 고구레 미치요(미츠코 역), 누마자키 이사오(아리타 역)

헤어짐도 즐겁다? 헤어짐마저도 즐겁다니 정겨움이 느껴지는 제목이 아닌가.
친구와 술 한잔 하고 기분 좋은 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떠오른다.
보다 낭만적인 사연이 생각나면 좋으련만. 흥겨운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일까
기대하며 본 단편작 '헤어짐도 즐겁다'는 역시나 익숙한 남겨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히로인 미츠코는 남편과 이혼 후 새로운 연인 아리타를 만났다. 그런데
아리타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된다. 아리타에게 새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미츠코는
그 소식을 듣고도 호기롭게 한순간의 흔들림일테고 머지않아 자신의 진가를 깨닫게
되리라 확신을 보인다. 곧이어 나타난 아리타는 뜻밖에도 새롭게 만난 여자로 인해
지금까지의 한심한 한량생활을 접고 직장을 구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보인다.
흐트러짐 없는 아리타의 고백에 미츠코는 아리타를 위해 헌신할 그 여자의 모습을 확연히
그려낼 수 있게 된다. 자신 역시 다른 연인이 생겼다는 거짓말을 하고 미안한 마음없이
떠나라고 한다. 자존심에 따른 허세였을까, 아니면 아리타를 생각하는 깊은 배려심때문
이었을까. 아리타가 떠나고 미츠코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헤어짐도 즐겁다!
연인의 이별은 궁색맞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제목을 살짝 읖조려보니 애써 정감이
우러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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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 Bug (1975)

영화노트 2010. 12. 16. 02:11

http://www.imdb.com/title/tt0072750/

지진으로 인해 지상에 출현하게 된 괴생명체의 공격을 그린 호러물로서 불을 일으키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에서 색다름을 느끼게 한다. 불을 일으키는 여자 초능력자 이야기인
'크로스파이어'에서 보여지는 사람을 불태우는, 화려한 파이어 장면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게
떠올랐는데 '버그'의 파이어 효과는 빈약하지만 실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와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버그의 습격 장면은 나름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영화 상에서는 벌레 한
마리가 활약해서 공격을 펼치는데 아무래도 당시 제작환경의 제약에 따른 것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떼를 이룬 공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지금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으로 다시 만들어도 꽤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버그의 몇차례 습격 장면이 있고
이후 주인공인 제임스 파미터 교수가 버그를 처음 발견한 학생과 버그를 퇴치하는 내용이겠거니
예상했는데 후반부는 아내를 잃고 이성을 상실한 파미터 교수가 바퀴벌레와 교배를 해 새로운
교배종을 만들어내는 실험장면으로 채워진다. 보노라면 명색이 벌레에 해박한 교수라는 사람이
실험 상자의 잠금상태도 허술하게 관리한다는 게 영 미덥지 못한 사내로 느껴졌다. ㅎㅎ 자신이
새로운 교배종을 제어할 수 있으리란 교수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종의 영악함은 결국
비극으로 이끌게 된다. 버그의 활약상이 기대만큼 풍성하진 않지만 실험실에서 교수와 버그 간의
긴장관계는 나름의 밀도가 느껴져서 인상에 남는 부분이다. 우리도 벌레들이 활약하는 영화를
한 편쯤 만들어도 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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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제임스 파미터 교수. 이 표정은 왠지 로저 코먼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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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은 날고기를 좋아한다.' 이런 류 영화에 나오는 자칭 교수라는 인물은 항상 같은 실수를 한다. ㅎㅎ
자신이 종을 확실히 제어할 수 있다고 자만하다가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바글바글거리는 벌레를 위한
테마송 Pearl Jam의 Bugs. 가사와는 별개로 무척 귀염성이 느껴지는 곡이다. ㅎㅎ
'I got bugs
I got bugs in my room
Bugs in my bed
Bugs in my ears
Their eggs in my head
Bugs in my pockets
Bugs in my 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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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바로 이 여성의 테러 장면이다. 전화기를 집어들다
피해자가 된다. 영화 상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를 하고 있지 않아서 김이 새는 감이 있지만
상상을 하면 할수록 몸이 움찔하게 된다. 그런게 벌레가 등장하는 영화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적나라한 느낌을 주는 건 의외로 희생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첫 희생물이
되는 고양이다. 버그를 얕잡아보다가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는 고양이의 모습이 꽤 처참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여성도 그렇고 파미터 교수의 부인도 그렇고 상당히 매력적인 마스크의
소유자들이다. 두 여성이 함께 등장하는 장례식 장면은 그래서 이상한 유쾌함마저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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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히로시: 아리가토 상 有りがたうさん (1936)
http://www.imdb.com/title/tt0027307/
http://www.criterion.com/films/1087-mr-thank-you
*아래 글은 오구리 고헤이 감독 홈페이지에 올려진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에세이를 옮긴 것임.

------------------------------------------------

제 3회 무라 영화상영회

올해 역시 군마현 오라마치에서 위의 영화상영회가 있습니다. 나는 프로그램 선정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아리가토 상'을 선정했습니다. 아래의 원고는 지난 달 도쿄상공회의소의 공보지 '트윈 아치'에 썼던 글입니다. 옮겨 적습니다..

------------------------------------------------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아리가토 상'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게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나다.
시미즈 히로시 감독은 1903년에 태어나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동갑이다. 쇼치쿠 카마타 스튜디오에서도 함께였고 두 사람은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탄생백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몇 번의 특집상영과 심포지움이 있었다. 오즈 감독은 지금도 유럽에서 신처럼 추앙을 받고 있어서 당연한 듯 하지만, 시미즈 감독은 근래의 프로그램이 재평가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쇼치쿠에서 DVD 박스셋을 발매했고 나 역시 그것으로 '아리가토 상'을 보게 되었다.
 
1936년 작품으로 일본영화가 본격적으로 토키 시대를 맞이할 시기였다. 시미즈 감독은 이때 이미 백편 이상의 영화를 연출한, 한마디로 잘 팔리는 상업감독이었다. 아이들을 무척 빼어나게 담아내는 사람으로 영화 '바람 속의 아이'는 무척 유명하다.

'아리가토 상'의 타이틀에는 '원작 가와바타 야스나리'라고 쓰여져 있지만 나는 배움이 짧아서 원작을 알지 못한다. 초기에 이즈를 무대로 한 소설집에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승하차 버스가 고개를 넘나든다. 시모타에서 미시마 부근까지의 여정인 듯 한데 이즈의 아마기 길은 당시 완연한 산속길이었다. 인부, 봇짐장수, 나무를 등에 지고 옮기는 사람, 짐마차, 짐수레 등등 걸어서 왕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버스를 타려면 돈이 들었다. 일본은 불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승하차 버스를 운전하는 이가 젊은 시절의 우에하라 켄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버스가 다가설 때마다 모두가 한결같이 금방 옆으로 비켜주고 버스길이 터진다. 그럴 때마다 운전수는 손을 들고 '아리가토(고맙습니다)... 아리가토...'라고 외친다. 그래서 '아리가토 상'이라고 불린다. '아리가토'라는 말의 울림이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왠지 모를 푸근함이 전해져서 나는 기적 같은 영화로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안고서 버스에 오른다. 구와노 미치코가 연기하는 떠돌이 작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꺼리낌없이 말하는, 이른바 감초 역할. 도쿄에 하녀로 팔려가는 소녀가 타고 있다. 딸을 보내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어머니는 딸을 적어도 역까지라도 배웅하려고 함께 버스에 오른다.

아리가토 상은 중고 시보레를 구입해서 영업하려는 계획이 있다. 하지만 고개를 넘어서 마을을 나간 소녀들은 되돌아온 적이 없다. 작부가 아리가토 상에게 시보레를 포기하면 소녀 한 명을 도울 수 있다고 부추기며 떠본다.

창 밖에는 출렁거리는 바다의 흰 물결, 길가로 늘어선 집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밭. 여행을 통해 극이 보여주는 건 로드무비라고 불리는 장르다. 물론 당시 일본영화에는 그런 호칭은 없다. 세계적으로도 60년대, 70년대가 되어서 나오게 된 호칭이다. 그 배경에는 두 개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촬영기자재의 문제. 옛날에는 무거워서 다루기가 부자유스러웠다. 무대에 모두 설치하고 찍는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아리가토 상'은 전편 로케로 찍은 영화다. 버스 안 장면도 모두 실재 버스에서 찍은 것이다. 시미즈 감독은 예전부터 롱쇼트를 즐겨 썼다. 풍경 속의 사람을 찍는 것이 탁월해서 다른 작품에서도 다르지 않다. 평론가 사토 타다오 씨가 DVD 부클릿에 오즈 감독의 시미즈 감독에 대한 평을 인용하고 있다. '시미즈 감독은 세트촬영에서도 로케처럼 찍는다'라고 쓰여져 있다.

'오즈 감독은 나와는 반대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통 이 정도까지 넓은 화면으로 잡으면 풍경도 인물도 함께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이즈 이상으로 시미즈 감독은 사이즈가 롱쇼트가 된다. 이것은 기법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 사람에게 자리잡은 자연관, 말하자면 풍경을 사고하는 방식에서 오는 선천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로드무비라고 해도 빔 벤더스나 짐 자무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두번째 이유와도 관계된 부분이기도 한데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그릴 수 없다 라는 사고가 구미의 일부 영화감독에게 있었다. 구미사회의, 말하자면 구미문화의, 숨이 막힐 듯한 폐쇄감으로부터 이탈이며, 도피이며, 또한 재생이다. 벤더스의 빼어난 시정도 결국은 폐쇄공간의 여행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리가토 상'에는 그러한 기운은 털끝만치도 없다. 오히려 지역사회에 보다 훌륭히 담겨지기 위해 풍경을, 풍경 속의 사람들을 영화라는 프레임 속에서 응시한다.

친절하고, 미남자이며, 인기가 좋은 아리가토 상은 여정의 도중에 여러가지 부탁을 받는다. 버스는 그때마다 정차를 한다. 걸어서 고개를 넘어온 예능인은 오늘 머물 곳이 바꼈다는 것을 뒤따라 오는 아이들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뽕을 따는 아가씨들은 도시에서 유행하는 레코드를 사와달라고 부탁한다.

흰색 치마 저고리를 입은 조선인 남녀를 아리가토 상의 버스가 지나쳐 간다. 버스는 터널 바로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여자들은 다가와 이야기를 걸지만 그 전의 휴식 모습의 묘사가 무척이나 좋다. 산, 흘러가는 구름, 승객들은 버스 밖으로 나와서 기지개를 켜고 절벽을 향해 돌을 던진다. 이유같은 건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 하녀로 가게 되는 소녀를 향한 아리가토 상의 마음도 흔들린다.

한 무리의 조선인은 도로공사를 위해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그 일이 끝나면 다음엔 신슈의 터널을 파러 간다고 한다. 길이 뚫려서 버스가 다닐 수 있게 되어도 자신들은 버스를 탈 수가 없다. 여자는 일본 기모노를 입고서 한 번 아리가토 상의 버스를 타고 싶었다고 한다. 이 대사는 감독이 한껏 타협한 것으로 보이는데 쇼와 10년대의 일본영화로서는 이마저도 어려웠을 것이다. 징용과 강제연행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중노동에 종사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다.


'저 곳에 길이 생기면 한 번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서 아리가토 상의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길이 없는 산으로 가서 길을 만들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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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가토 상'에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무언가가 해결된다거나  무언가가 바껴간다는 인상은 없다. 오히려 조선인 노동자들 무리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즈 지방, 생활터전의 전체상이 사람이 이동하고 버스가 이동함으로써 새롭게 떠오르는 듯 하다. 이동해서 어딘가로 가는, 그런 홀가분한 로드무비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인생의 여운과 애정을 오가는 삶의 리듬과 스피드 같은 것이 있다. 그것보다도 조금 더 빠른 스피드로 버스가 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조금 더 빠를 뿐이어서 그 버스가 사람들을 지나칠 적마다 '아리가토 상'이라고 말을 걸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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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써클 DVD

영화노트 2010. 11. 26. 00:11
11월 DVD 할인제품을 살펴보다 눈에 들어온 박기형 감독의 '폭력써클' DVD.
영화 자체만으로는 취향과는 동떨어진 영화여서 싼 가격이라도 구입욕구가
크지 않을 영화인데 구입이유는 오로지 장희진 양의 존재. 후후...
장희진 양 출연한 작품은 예전 아리랑 TV에서 방영해줬던 어떤 드라마를 본 게
유일하다. 외모가 일본배우 하즈키 리오나를 무척 닮았다고 느껴서 놀란 기억이
있다. TV를 열심히 보는 편이면 출연작을 좀 챙겨볼텐데 아쉬움이 크다.

하즈키 리오나. 지금은 나이가 꽤 되었지만 한창 때는 꽤 미모? ㅎㅎ
'검은 천사'의 호텔방 씬에서 담배를 문 하즈키 리오나. 조력자 남자와
신나게 춤을 벌이는 장면인데 유쾌함이 느껴져서 좋아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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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 양 싸인이 들어있을까 싶어서 두근두근 개봉. 그런데 이태성의 싸인.
실망도 잠시 '사랑니'에서 나름 괜찮았던 걸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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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여유있게 볼 짬은 안되고 '희진의 셀프 카메라'라는 셔플을 잠시 돌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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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inematoday.jp/page/N0028029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학교를 세웠다고 해서 관심이 가던 학교인데 대학인가가 난 모양이다.
국내감독으로는 '나의 결혼원정기'를 만들었던 황병국 감독이 이 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학교
홈페이지에 출신감독이라고 황병국 감독의 사진이 떡하니 있다. ㅎㅎ

 [시네마투데이] 2011년 4월에 일본 최초의 영화대학이 되는 '일본영화대학'이 시작한다. 대학의 모체가 되는 일본영화학교는 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개강, 대학화는 이마무라 감독의 오랜 꿈이었다.

일본영화대학의 모체가 되는 일본영화학교는 이마무라 감독이 1975년에 요코하마 방송영화 전문학원으로 개교했다. 1986년에 요코하마시에서 카와사키시로 이전 후 학교명도 일본영화학교로 개칭, 30여년 동안 일본영화계를 지탱하는 재능을 배출해왔다. 졸업생에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 모토히로 카츠유키 감독, 이상일 감독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학화는 이마무라 감독의 숙원으로 직접 작성한 '일본영화대학 취지서'에서 '영화를 배우는 것은 보다 깊이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일본최초의 영화대학의 탄생이 일본영화계의 모든 면에서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일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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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anspo.com/geino/news/101028/gnj1010281350030-n1.htm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1910 - 1998)이 초기에 참여한 영화와 라디오드라마의 각본 3편이 28일 현재까지 발견되었다. 구로사와 작품을 살펴보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발견된 작품은 영화 '칸오케마루의 사람들,'내일을 만드는 사람들'과 라디오드라마 '활기찬 공장'의 초기 원고와 본 원고. 하마노 야스키 도쿄대 교수(미디어론)가 '대계 구로사와 아키라'(고단샤) 편찬하는 과정에서 확인하였다.

효고현 이치카와 하시모토 시노부 기념관에서 발견된 '칸오케마루의 사람들'은 구로사와 감독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각본가 하시모토가 집필. 미후네 도시로 주연으로 51년 공개예정이었지만 도중 제작이 중단되었다. 낡은 운송선의 선원들이 악천후를 이겨나가는 스토리로 감독의 액션영화의 계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활기찬 공장'은 구로사와 감독이 조감독 시절 썼던 작품으로 42년 8월 NHK 라디오드라마로 방송된 후 와세다 대학 연극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내일을 만드는 사람들'은 46년 도호 노동조합이 기획. 다른 감독과의 공동작품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생전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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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달 포털 사이트에 가네코 슈스케 감독의 이름이 뜬금없이 보이길래
설마 이 양반이 무슨 사고를 쳤나 했더니 소녀시대 기사에 꼽사리 끼어서
등장. 난데없긴 했지만 반가운 등장이긴 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가봤더니
소녀시대 글이 꽤 있군. 이 아저씨 언제 소녀시대 팬이 되었지. 하하...
블로그에 있는 글 몇 개를 옮겨봤다.

2010. 6. 20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 탄생 백년 이벤트
좌익인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야마모토'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인 호칭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붉은 세실 B 드밀'이라고 불러도 '과연 그렇다'고 무릎을 칠 사람도 이제는 적지 않을까.
하지만 19일 토요일 낮 니시타니 구민센터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오타케 시노부 씨가
인사를 하고 '아! 노무기 고개 ああ野麦峠 (1982)'의 상영이 시작되었다.

30년 전의 시노부짱, 귀여워. 지금은 마른 편이지만.

로쿠메이칸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발끝과 눈 속을 걷는 여공들의 발끝을 교차로 보여주는 '전설의 컷백'
으로 시작하는 2시간 40여분은 긴장감을 놓지 않는 빼어난 연출력으로 보여준다.

중학교 3학년 때 '전쟁과 인간 戦争と人間'을 본 이후로 나도 상당한 야마모토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고지라, 모스라, 킹 기도라 대괴수 총공격'의 첫 장면도 '전쟁과 인간'의 첫 장면에서 가져온 것이다.
'가메라 2'에서는 히구치 신지와 콘티를 만들 때 '전쟁과 인간'의 비디오를 틀어 놓고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치이 다케오 씨, 아카츠카 마사토 씨, 갑작스레 야마모토 노보루 씨가 무대에
올라서 야마모토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고토 토시오 감독의 사회로 토크쇼가 진행되어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카모노'에 출연한 고테가와 유코(古手川祐子) 씨로부터도 야마모토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 나는
대학 때 '텐포 수호전 天保水滸伝(1976)'의 현장에 견학을 가서 잠시 야마모토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키네마 준포의 독자 영화평에도 '금환식 金環食 (1975)'에 대한 평을 써서 게재했다. '프라이드'도 사실은
야마모토 감독의 터치를 의식했다. 아무도 지적하진 않았지만. '바카모노'는 나루세 감독일까.
오타케 시노부라면 국내 소개된 '고 GO'라는 영화가 있다. 재일한국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오타케 시노부는 주인공의 어머니 역으로 등장해서 재미있는 개그 신을 적지 않게 보여준다. 일전에
1978년작 '귀축'을 보다가 막판에 등장하는 오타케 시노부의 모습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연세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귀염상인 분인데 한창 때 모습은 정말...덜덜덜...  '귀축'에서 주인공
꼬마를 설득하는 여경으로 잠시 등장한다. 일본판 '검은 집'에서 싸이코 살인마 역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그 역할은 내겐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었다. 그 아줌마 너무 살벌하다. ㅜ.ㅜ
이번 부산영화제에 미야자키 아오이와 함께 온다는데 가야 할텐데... 가야 할텐데.... -.-;



2010. 7. 4
'1999년의 여름방학' 사가미 여자대학 상영회
거의 올해 입학한 여자대학생 모두, 말하자면 영화가 만들어진 1987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앞에서
'1999년의 여름방학'을 상영, 그리고 20분 후에는 23년이 흐른 뒤의 미야지마 에리가 출연하는 이벤트가 있
었다. 당시 관람했던 사람들도 몇 명인가 와주었고 상영장을 활기 차게 해주었다.

문학과 미나미 아스카 교수, 미디어 정보학과의 이마이 사야카 강사도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었다.
'물이 재생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창의 커튼, 복고적인 소품들이 신비로운 미래감을 느끼게 한다' 등
대학 심포지움 다운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제목을 정할 때 1999년이 지나면 어떻게 느껴질까 상상을 해보았지만 '세기말의 이미지'라는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란 확신을 했었다.

지금이야 세기말은 먼 과거가 되었지만 혼돈스러운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아이였던 미야지마 에리는 아름다운 어머니가 되엇다. 영화에서의 키스가 첫 키스였다고 하는데...
소년을 연기한 소녀와의 첫 키스였다니... 내 탓인가... 미안...



2010. 9. 8.
후카츠 에리 씨,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최근 토호 스튜디오에서 '근사한 수면장애 ステキな金縛り (미타니 코키 연출작)'의 현장에서 만났지만
예전과 전혀 변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데뷔작의 감독과 만나는 것은 학교의 선생님과 만나는 기분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1987년 여름에 촬영한 '1999년의 여름방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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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타이틀에는 '미즈하라 에리'라고 되어 있지만 스태프 모두가 '후카츠라는 이름이 훨 나은데'라고
말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었지. 해외 팬들로부터 '미즈하라가 후카츠 씨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몇 번이나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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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가수로서 다카하라 에리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게 되면서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아이돌'로 불린 적도
있었다.

최근 사가미 여자대학에 열린 심포지움에서 미야지마 에리에게서도 후카츠 씨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후카츠
씨는 처음부터 굉장히 착실했어요. 우리들은 프로니깐 열심히 하자고 말하면서 힘을 불어 넣어줬어요'라고
말했다. 열네살에 그런 말씀씀이라니!

미야지마는 엄마가 되었다고 했더니 무척 놀라워 했다.

아무튼 반가운 소식입니다.
어제부터 놀라울 정도로 전세계로부터 접속이 있어서 '소녀시대' 이야기만 썼다가는 큰일이다 싶어서 이 글을
써봅니다.
요즘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성균관 스캔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주인공 4인방을 모두 여자배우로 캐스팅하면 어떨까 싶은 상상을 해봤다. 오히려
주인공 윤희를 덩치 좋고 남자다운 여자배우로 캐스팅하면 제대로 흥할 텐데 라는 멋대로의 상상... -.-;;
Posted by java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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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버린 꽃 / 마른 꽃 Pale Flower 乾いた花' DVD에 수록된 감독 인터뷰를 옮긴 것임
http://www.imdb.com/title/tt0056327/



진로수정

어렸을 적 다른 아이들처럼 문학이나 옛날 이야기에 가슴 뛰던 소년시절이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 특히 물리학을 좋아했습니다. 생활수단으로 과학분야 쪽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45년 15살 때 일본이 전쟁에서 졌습니다. 이건 저에게 일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문화와 전통은 붕괴했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어야 할 신들이 파괴가 되었습니다. 물리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 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다시 한 번 문학, 영화, 연극 등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쇼치쿠 뉴웨이브
우리들이 촬영소에 들어갔을 때가 모두 20살이나 23살 때였습니다. 제 위에는 이마무라 쇼헤이라는 거장이 있었습니다. 제 바로 밑에는 오시마 나기사, 야마다 요지, 요시다 요시시게가 있었습니다. 굉장한 재능들이 제 주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조감독으로 참여한 영화들은 우리들에게 굉장히 멍청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로는 감독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는 감독이 되려는 걸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오시마 나기사와 다른 감독들은 이런 현상을 헤쳐나가려는 무브먼트를 만들려는 노력을 했습니다.그 때 저는 속세를 떠난 사람 마냥 촬영이 끝나면 근처 바닷가에서 매일 수영을 했습니다. 제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오즈 야스지로가 이젠 굉장히 노쇠해버렸다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존경했던 거장 오즈 야스지로와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작품이 반복적인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당시의 권위와 같았습니다만 그분들과는 다른 것을 찾지 않으면 우리들만의 세계를 열지 못하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세대가 대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소의 방식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들이 27, 28살 무렵 모두 그런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들에게 연출기회가 왔을 때 우리 시나리오로 우리 영화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뉴웨이브라고 이름 붙여진 무브먼트가 되었습니다.

신인감독
당시 제가 쇼치쿠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쇼치쿠가 다루기엔 껄끄러운 것이라 여겨서 독립프로덕션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쇼치쿠에서는 제가 쇼치쿠의 전통에서 꽤 떨어져 있다는 걸 파악하고서 포기를 한 상태였습니다. 동시에 우리들의 새로운 시도가 늙은 쇼치쿠를 다시 생생하게 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품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와 다른 일련의 감독들이 젊었을 때 쇼치쿠는 그들에게 연출기회를 줬고 굉장한 영화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한 전례가 우리를 도왔다고 봅니다. 쇼치쿠의 틀에 박힌 스탭이 아닌 쇼치쿠의 밖에 있는 우리들의 태도를 지켜봐줬습니다.

일본의 정체성
일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미소 냉전 사이에서 끼어있고 우리들은 의식이나 삶의 가치를 찾아내기 힘든 세대였다고 생각합니다. 폐쇄적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두 명의 주인공 캐릭터의 갈증, 작가의 갈증 그리고 저의 갈증으로 굉장히 일치한 영화였습니다. 그 당시까지 정체성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갈증이 드러나고 있었다고 봅니다. 정체성이라는 말이 태어나기 직전의 시기였습니다.

고독과 허무주의
저는 '말라버린 꽃'의 원작자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정치적인 시선과 닮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야쿠자는 절체절명의
충성심을 요구합니다. 일본에서 '기리'와 '닌조'라고 합니다. 야쿠자가 살아가는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미소가 냉전 중이고 일본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와 같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외로운 늑대같은 사내가 있고 야쿠자의 분쟁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냉전상황을 야쿠자 영화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오야붕을 모시지 않는 고립을 선택하는,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일상이 붕괴되어 버리는 것이 이 영화의 야쿠자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기리와 닌조를 벗어난, 야쿠자의 모럴이 전혀 없는 허무가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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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
암살자가 누군가를 살해하려 할 때 암살장면보다 암살의 시간이 다가오는 암살자가 어떻게 일상을 보낼까가 제 흥미를 끌었습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이 멍하니 있는 일상을 '말라버린 꽃'에서 잡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케베에게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모럴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물중독자 캐릭터는 우리들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입니다. 일본영화에서는 오래도록 일반관객에게 금기시되던 절망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인간은 죽는다, 타락한다, 구원할 힘도 때로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케베에게 존재하는 실존이 우리 사회의 모럴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에서 강렬하고 씁쓸한 맛을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협력
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쓴 파트너는 바바 마사루였습니다. 상당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굉장히 위트있는 대사를 써냈습니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도 마찬가지로 하겠지만 도박장 장면을 한 줄의 대사로 깔끔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한 줄을 100 컷으로 구성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굉장히 세세한 도박장 장면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 장면들이 이야기를 감춰버립니다. 자신이 생각한 플롯이 안 보인다며 시사회가 끝나자 화가 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영화가 상영금지된 사유는 아니었습니다. 도박장면이 너무 많아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쇼치쿠는 모럴이 높은 회사니깐 이런 안티모럴 영화는 개봉할 수 없었습니다. 개봉시키지 못한 건 제 책임입니다.

말라버린 꽃에 대한 반응
저의 다른 영화에 참여했던 테라야마 슈지의 각본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처럼 시나리오가 이해불능이라는 불만도 있었고, 다케미츠 토루의 음악이 일반대중에게는 너무 난해하다는 등 영화가 완성된 후 수많은 불만의견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성공적이라는 평도 있어서 회사로서는 꽤 복잡한 심경이었을 겁니다. 영화가 완성이 되고 상영금지가 되었습니다. 검열통과가 실패했고 쇼치쿠 관객에게 맞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영은 금지되었습니다. 제 영화가 상업영화를 목표로 하는 회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 나만의 독립프로덕션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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